문학공간의 꽃 이미지 산책(17)

-장미➂ 한 상 훈 (문학평론가)

이영자 기자 | 기사입력 2021/06/03 [20:35]

문학공간의 꽃 이미지 산책(17)

-장미➂ 한 상 훈 (문학평론가)

이영자 기자 | 입력 : 2021/06/03 [20:35]

  

  © 포스트24


                          

                              문학공간의 꽃 이미지 산책(17)
                                                 -장미➂


                                                                                                   한 상 훈(문학평론가)


장미 1, 2편(문학 6, 7) 에 이어, 이번 장미 3편에선 장미의 아름답고 밝은 이미지보단 어둡거나 성적 표현에 빗댄 장미 텍스트로 선택했다.
제30회 이상문학상(2006)을 수상했던 정미경(1960~2017)의 단편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 ‘발칸의 장미’란 무엇일까. 다분히 제목부터 낯설게 하기의 수법으로 독자들을 끌어당긴다. 이혼과 불륜, 기러기 아빠를 소재로 한 통속적 서사이지만, 그것을 요리해 나가는 과정에서 만만치 않은 작가의 저력이 느껴진다.
21세기 초 현대를 살아가는 도시인의 어두운 삶의 단면을 그리고 있는데, 기러기 아빠인 그와 30대 미혼 간호사인 제이의 사랑을 교차 시점으로 그리고 있는 점이 특징적이다. 아니, 사랑이라기보다 섹스파트너로서 서로 간에 존재의 의미를 탐색해나가는 소설로 봐야겠다. 그들은 원룸아파트의 엘리베이트에서 처음 만난 사이다.

 

다국적 제약회사에 다니고 있는 그는 간호사인 제이에게 출장으로 외국에 나갔다고 알리지만, 사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아내와 아이들을 만나고 오는 중이다. 제이는 이미 기러기 아빠의 사연을 담은 TV에서, 그가 출연해 인터뷰하는 것을 보고, 그의 여행 목적을 알고 있었다. 아내는 아이들의 영어연수를 위해서 6개월만 샌프란시스코에 체류하겠다고 아이들과 떠났다. 1년만 하더니, 아내는 아이들과 합세하여 그곳에 눌러앉았다.
미국에 가기 전부터, 아내는 그와의 삶을 정리했다. “아내의 배 위에서 트림을 한 일”이나 “또 함부로 방귀를 뀌는 행위”에서 아내가 못 견디겠다고 한다면 심각한 일이 아니나, “국을 떠먹는 모습”이나 “수그린 머리의 가르마”에서 아내는 견딜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는 아내와 아이들이 떠난 뒤, 원룸에서 혼자 살면서 나이트클럽에 가서 젊은 여자애들과 술도 마시고 모텔에도 갔다. 하지만 애정 없는 섹스에 지루함도 느끼고, 돈도 많이 들어 부담스러워하는 차에, 우연히 제이를 만난 것이다. 그녀 역시 혼자 살면서 섹스를 통해 외로움을 달랜다. 서로 간에 필요 이상 상대방에 대해서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도시의 바쁜 일상 속에서 “타인의 외로움이나 공허감까지 같이 껴안고 싶지” 않은 것이다. 제이의 원룸에서 만나게 되면 “식사와 커피, 섹스는 고정된 스케줄”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의 아내와 아이들에게 다녀온 후, 그는 ‘꽃배달’ 왔다며 제이의 방을 두드린다. 제이가 “현관문을 여니 사람보다 먼저 장미꽃 다발이 코앞으로 쑥 다가왔다.” 그는 ‘발칸의 장미’라고 말한다.
“발칸 반도의 어둠이 흩어지기 전, 무거운 공기가 흔들리기 전, 자정부터 새벽 사이에 줄기를 자른, 강한 향기가 고스란히 가두어져 있는 그곳의 장미”라며, 지상에서 가장 귀한 꽃이라고 하지만, 제이는 비와 진흙으로 범벅이 되고 끝이 검게 변하기 시작한 장미다발이 “처절한 내전의 땅”에서 온 것처럼 보일 뿐, 길거리 좌판에서나 사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이는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는 장미다발을 드라이플라워나 만들어야겠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그는 ‘장미’를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꽃’으로 그녀에게 전달하지만, 제이에겐 가장 성의 없고 흔해빠진 ‘꽃’에 불과한 것이다. ‘장미’는 두 캐릭터의 마음을 전달하는 매체로서 작동하지만, 애정이 배제된 그들의 섹슈얼리티에서 알 수 있듯이, 서로 간에 마음은 ‘불통’으로 끝난다. 그러한 점은 이 소설의 비극적 결말을 예감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 ‘장미’ 이미지는, 양자 간의 불협화음의 매체로서 작용하는 것에 끝나지 않는다.
“장미는 여성의 은밀한 부위를 상징하지. 조지 오키프의 장미 그림을 본 적이 있어? 그의 장미는 여성의 뜨거움과 파괴성과 습기와 매혹, 슬픔과 손대고 싶은 유혹을 성기보다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어.”
그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발칸의 장미’라고 하면서, 마지막에는 섹스파트너답게 ‘장미’를 그녀의 ‘성기’에 빗댄다. 제이는 막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기 직전의 장미라고 생각하지만, 그의 그러한 성적 표현엔 별로 거부감이 없다. 오직 육체적 욕망의 대상으로 그와 동일한 지점에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이들의 건조하고 황량한 삶의 풍경은, 비정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끝난다. 어느 날 그는 아무도 없는 원룸에서 갑자기 심장마비로 쓰러진다. 며칠이 지나서, 회사에서 사람들이 나와 마룻바닥에 죽어있는 그를 발견한다. 경관이 그의 아래층에 사는 제이의 룸에 와서, 위층에서 ‘이상한 기척’이 없었냐고 묻지만, 그녀는 모른다는 차가운 답변을 한다. 실제로 제이는 그의 섹스파트너일 뿐, 그의 신상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다. 그녀는 그에게서 선물 받아 걸어놓았던 ‘장미 다발’을 쓰레기통에 버린다.

 

이 소설에서 ‘시들어버린 장미’는 사랑 없이 섹스의 욕망만을 탐하는 제이를 암시하기도 하지만, 이미 도시적 삶에 지치고 아내와 아이들에게 배반당한 그의 초상이기도 하다.
작가 정미경은 ‘장미’ 이미지를 제목에서부터 독자들에게 ‘흥미’를 유발시키고, 다층적인 문학적 장치로 활용한다. 그 결과 서사가 짜임새 있게 구도화 되어, 사회성이 짙은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소설 미학적 균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또 한 편의 소설, 1930년대 후반에 발표된 이효석(1907~1942)의 ‘장미’를 소재로 한 독특한 작품이 눈에 띈다. 그 당시 서구적 분위기의 시대적 조류 속에서 젊은 지식인들의 방황을 리얼하게 그린 단편 「장미 병들다」가 그것이다.
진보적인 세계관을 지닌 젊은이들의 상처와 좌절을 그린 소설이다. 여주인공 남죽은 진보적 사상에 심취된 연극배우지만, 고향에 갈 수 없는 가난한 현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매춘을 하게 된다.
그녀는 “단발한 머리를 부스스 헤뜨리고 밋밋하고 건강한 육체로 고운 멜로디를 읊조릴 때에는 그의 몸 그대로가 구석구석에 아름다운 꿈을 함빡 머금은 흐뭇한 꽃”이었다. 그러나 세월의 격랑 속에서 “아담하던 꽃은 벌써 좀먹기 시작한, 그 어딘지 휘줄그러진 한 송이” 꽃으로 전락하게 된다.

 

작가 이효석은 진취적 신여성의 불행한 삶의 궤적을 통해, 참혹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일제의 시대적 상황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서구 에로티즘의 영향을 받은 이효석은 일제의 억압으로 인한 가난 때문에 변절할 수밖에 없었던 한 여성(남죽)의 무분별한 삶의 양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결국, 젊고 아름다웠던 그녀는 매춘과 성병으로 인해 진정한 삶의 가치를 상실하고, ‘병든 장미’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작가들에게 ‘장미’는 탐미적 대상이다. 그렇지만 때로는 이처럼 인간에게 고통이나 시련, 타락의 감정을 동시에 안겨주는 모순적 사물로 비유되고 있다.

‘장미’ 이미지를 가장 속화된 의미로 차용한 작품엔 바로 마광수(1951~2017)의 시 「가자, 장미여관으로」를 꼽을 수 있겠다.

“만나서 이빨만 까기는 싫어/ 점잖은 척 뜸들이며 썰풀기는 더욱 싫어/ 러브 이즈 터치/ 러브 이즈 휠링/ 가자, 장미여관으로!// 화사한 레스토랑에서 어색하게 쌍칼 놀리긴 싫어/ 없는 돈에 콜택시, 의젓한 드라이브는 싫어/ 사랑은 순간으로 와서 영원이 되는 것/ 난 말 없는 보디 랭귀지가 제일 좋아/ 가자, 장미여관으로!”

이 시의 화자는 “나는 뽀뽀하고 싶어 죽겠는데,/ 오 그녀는 토론만 하자고 하네”처럼 젊은 여자들에 대한 성적 욕망을 날 것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화자의 진술은 점잖은 척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이중적인 성담론에 대한 냉소이며 풍자다.
이 시의 핵심 코드인 ‘장미’는 당연히 섹슈얼하고 원색적인 인간의 욕망을 지칭한다. 마광수는 세기말적 상상력으로 이 시뿐만 아니라 장편 『즐거운 사라』에서도 노골적인 성적 묘사의 포르노그래피를 통해 지성인의 허위의식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한상훈 평론가

 

  [약력]
 □ 서울 출생, 1986년 《현대문학》 평론 추천
 □ 평론집 『꽃은 말을 하지 않지만』 『현대소설과 영화의 새로운 지평』 
    『문학의 숲에서 새를 만나다』 『아웃사이더의 시선』 등을 출간하였다.
 □ 한국문인협회, 국제펜 한국본부 회원 hansan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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