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밀면서 오래달리기』, 권이화 시인을 만나다

연명지 기자 | 기사입력 2021/04/13 [10:17]

『어둠을 밀면서 오래달리기』, 권이화 시인을 만나다

연명지 기자 | 입력 : 2021/04/13 [10:17]

           

  ▲ 권이화 시인.                                                                                             © 포스트24


▶권이화 시인의 시를 열면 새 한 마리 날아오른다. 문장 안의 주어가 다른 서술어를 찾아 날아오르는 행간을 따라가다 보면, 비밀의 서사인 어둠들을 만나게 된다. 모호함의 감각과 이미지로 자신의 생각을 끝까지 밀고 나가 고요하게 새 한 마리 세상 밖으로 날려 보낸다. 새소리 끝으로 오는 분홍이 환하게 비상하기를 소망하며, 인터뷰에 진심과 마음을 담아준 권이화 시인에게 문운의 열매가 풍성하기를 바란다.


Q : 『어둠을 밀면서 오래달리기』는 어떤 시집인가요 ?

A : 제가 시를 공부한지 십 년째 되는 해에 발간한 첫 시집입니다. 우연한 계기로 시를 배우게 되었을 때 참 재미있었어요. 어릴 땐 소설가를 꿈꿨지만 산문만 써오다 배운지 일 년 만에 동서커피문학상에서 입선을 했는데 상당히 고무돼 열정을 가지고 공부를 했습니다. 중앙대예술대학원에 개설된 창작전문가과정에 입학해 본격적인 시인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2014년 미네르바로 등단하고 2016년 한국문학방송신춘문예에 당선한 뒤 이어 2019년까지 발표한 시를 모아서 시집으로 묶었는데, 하나의 형식이나 주제를 관통할 기법이나 사유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현대시의 흐름을 따라 다양한 시쓰기를 했고, 소재는 영화나 음악 그림 여행 소설에서 많이 얻었습니다. 보고 듣고 느낀 것 중에서 오래 저를 응시하는 사물이나 풍경을 제 눈높이만큼 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좀 더 확장하려고 애썼습니다. 현대는 기술의 발전이 상상하거나 꿈꾸는 세계를 실재 현실로 보여주잖아요? 그래서 사고의 확장은 자유롭고 거침이 없는 사유의 유토피아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 시집이 약간의 환상적인 느낌이 드는 이유이기도 한데요, 서사가 있어 오히려 현실에 발을 잘 디디고 있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시는 낯선 땅에 발을 내딛는 미학이라는 데는 변함이 없습니다.


Q : 권이화 시인의 시적 정서와 기법은 무엇인가요?

A : 제 시적정서는 어둠이 아닐까합니다. 저는 어둠을 중요한 정서로 생각합니다. 어둠 속에서 태어나 어둠 속으로 가는 도정에서 수많은 어둠을 목격합니다. 어둠 속에서 미소 짓고 어둠 속에서 사랑하며 어둠 속에서 고요히 바람이 불어오는 소리를 듣습니다. 어둠 속에서 별이 빛나고 어둠 속에서 희망이 얼굴을 드러내고 어둠 속에서 우리가 잠들며 어둠 속에서 자라고 어둠 속에서 하루를 건너갑니다. 그래서 제 시집도 제가 없는 어둠 속에서도 오래오래 밀고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제목을 붙였습니다.

 

해가 뜨면 어둠은 잠시 밀려나고 밝음이 열립니다. 그 가운데서 비를 만나고 새를 만나고 나무와 꽃을 만나 어울리고 또 거기서 오는 생명의 활기가 넘칩니다. 그러나 밝음 속에서 호수와 산과 또는 건축물이 위용을 드러내고 더 없이 아름답지만 모두 어둠을 품고 있습니다. 보이는 일부 외에는 다 어둠일 것입니다. 어둠을 모태로 아름다움은 더 확장될 것이며 멀리 나아갑니다. 그것이 존재들의 모습이겠지요. 이렇듯 제 시가 어둠의 정서를 기반으로 삼는 것은 부정적 이미지로서가 아니라, 그리스 철학에서 어둠을 ‘아르케’로 보는 것에 더 가깝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어둠을 그대로 받아드리기도 합니다. 사랑을 보면, 새를 고양이를 꽃을 보면 애처롭고 가엾습니다. 생명의 유한성에 대한 자각 같은 것입니다. 측은지심이 생기지 않는 식물이 없고 그렇지 않은 눈빛이 하나도 없어요. 그럴 때 눈을 감아 봅니다. 곧 알 수 없는 편안함과 끝없는 깊이감에 비로소 슬픔도 잠잠해지곤 합니다. 태초 엄마 뱃속이 그러하였듯 어두워져야 존재들을 잘 이해하게 됩니다. 어떤 축복이든 밖은 밝고 안은 어두울 테니까요.


시적기법을 물으셨는데, 시작에서 참 중요한 요소 같습니다. 어떻게 쓸 것인가를 시인들은 늘 고민합니다. 현대시는 현대에 쓰인 시를 말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감각으로 끊임없이 진화하는 시니까요, 김수영 시인의 말처럼 기법 또한 마찬가지로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일 텐데, 저는 그런 건 잘 모르고 그냥 쓰고 있습니다. 특별히 어떤 수사법이나 비유법을 생각하지도 않고 주로 서정시를 자유로운 마음으로 쓰는 것 같습니다. 모더니티와 리얼리티, 구조나 서술방식을 고민합니다만, 그 또한 대체로 그저 쓰는 것입니다. 잘 써진 시는 그 자체만으로도 저 위에서 빛나는 무엇입니다.

 

 ▲권이화 시집, 『어둠을 밀면서 오래달리기』.                                         © 포스트24

 


▶ 권이화 시인의 대표시 2편을 소개합니다


                    어둠을 밀면서 오래달리기


         
태양이 사라진 후에도 달리는 일을 멈출 수 없다

          먼 곳에서 꽃이 오듯 오래된 약속 같은 오래 오래 달리는 것

          나를 따라오세요, 꽃구름 만발한 부름 스스로 찬란하여
          아직 힘을 주는 달리기 백년을 갈 테니 아름다움 주세요

          미처 따르지 못해 한나절 흙길 걸어간 여름조차
          둥글게 당신 감싸는 좋은 저녁이 목구멍을 올라온다
 
          나를 따라오세요, 지금 어둠을 여시는 이 빛으로
          한 올 한 올 촘촘히 엮어 천년을 달려갈 테니 새를 주세요

          마치 당신이 바다에서 숲에서 뭍으로 평야로 달려와
          찬란한 발이나 손으로 빛을 다해 한 생애 몰아가듯

          마치 새 같이 저기 기쁜 마음으로 둥글게 날아오르는 어둠 
          별이 별을 몰아가듯 당신을 따라 둥글게 달린다

          멀리 날아가는 새처럼 달리는 일이 아름다움이 될 때

 


                    명랑주의보

                            

          손바닥이 기울어진 채 기차를 타고 팔랑팔랑 바다로 갈래

          바다의 한가운데서 보이지 않는 것들에 닿으려는 표정으로

          고백하는 노을을 흩어놓을 때, 손은 꿈을 멈추지 않는다

          멸치 떼 같은 명랑의 군무가 물보라를 일으키네

          어떤 꿈이 바다 깊숙한 곳으로 사라지는 순간을 보며

          창밖으로 팔랑팔랑 넘어가는 명랑한 이름들

          오늘의 바다는 풍랑주의보, 검은 바다의 안쪽이 위태롭네

          여기서부터 섬까지 얼마나 걸릴까

          그러니까 팔랑팔랑 우리의 명랑주의보는 쾌속정의 일

          명랑에서 명랑으로 넓이와 깊이를 만들며 쾌속정은 달리지

          다가가면 갈수록 점점 멀어지는, 여기는 꿈 명랑이야

          바다를 밀면 죽은 물고기 떼가 가득 찬 바다의 내부

          파도를 타고 수많은 계단이 있는 푸른 당신에게 도착한다

          내 손은 여전히 섬에 도착하는 일, 속도를 줄이지 않는 명랑

 

 

▷권이화의 시는 형용사들의 세계에 머무르지 않는다. 티 없이 맑은 실존의 하늘 아래 모래시계처럼, 또는 시지프스의 일상처럼, 혼신의 힘을 다해서 움직이거나 늘 어디론가 가고 있지만 그것이 욕망하는 것은 텅 빈 자리이다. 그러니까 그는 ‘비어서 채워지는 세계’를 꿈꾸는 시인인 셈이다. 소묘되는 풍경에 도취되지 않는 정갈함, 일체의 무거움을 걷어버린 추상의 세계에 깃드는 ‘낮’과 ‘밤’ 그리고 ‘별’과 ‘새’들에게는 ‘영원’과 ‘찰나’가 함께 숨 쉰다. 주목할 것은 오히려 어떤 이념적 강박도 없이 ‘지금 현재’를 수놓는 ‘동사’들이다. 이렇게 대지의 표정과 동작과 동선을 바느질한 흔적을 남기지 않고 꿰어내는 기법을 나는 ‘초월적 이미지즘’이라고 명명해두고 싶다.
                                                     -김형수(시인, 문학평론가)

 

 

 

 

  

   ▲권이화 시인

 

 〔약력〕

 □ 경북 안동 출생. 
 □ 2014년 「미네르바」 등단.
 □ 시집 『어둠을 밀면서 오래달리기』

 

 

 【편집=이영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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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경 2021/04/13 [14:08] 수정 | 삭제
  • 축하드립니다ㆍ어둠을 밀치고 오래 달리기가 생의 좌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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