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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옥 문학박사의 현장 시평 (25)

비시간성에 의한 그림자의 상징

이영자 기자 | 기사입력 2022/05/18 [22:27]

권영옥 문학박사의 현장 시평 (25)

비시간성에 의한 그림자의 상징

이영자 기자 | 입력 : 2022/05/18 [22:27]

    © 포스트24

 

                         권영옥 문학박사의 현장 시평 (25)

                             비시간성에 의한 그림자의 상징

                 -신미나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창비시선』, 2021)

 

 시간이란 무정형 상태에서 뚜렷한 형태를 볼 수 있는 빛과 연관이 있다. 이 빛에 의해 모든 유기체는 생존이 가능해진다.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 존재의 시간은 달의 주기와 태양의 궤도에 따라 삶이 변화한다. 하지만 신미나 시인은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에서 비시간성의 주술을 사용해 문명화된 현실 세계에 대응하고 있다. 이 시집에서 그림자의 상징은 영靈에 대한 개방이며, 죽음, 주체의 경험 외부에 있는 사건이 주체에게 인식되는 것 등이다. 이러한 상징의 기능은 우주적 이야기가 인간의 창조적 신비 앞에 모습을 나타냄으로써 속신과 설화의 세계를 구축하게 된다. 이 세계는 신적 존재로 인해 생성의 신비를 드러내는데, 특히 샤먼의 주술은 환각을 동반한 그림자로 나타난다. 그림자가 현실적 존재의 꿈에 나타난다는 점에서 시들은 개인 무의식에 중점을 둔 정신분석 방법론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환각이나 꿈이 시인에게 파편화되어 나타나거나 무의식에 의한 고통과 통증을 유발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일련의 이야기가 구체성을 띠면서 인간의 생명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비시간성에 의한 신화⸱원형 방법론의 특징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그림자의 세계는 과학적 사고로 이해할 수 없고, 시의 정서로 이해되는 주술적 세계이다. 특히 주술에서 그림자는 원초적 속화에서 점진적 속 세계로 전개되는데, 이 시집에서 속세계는 죽은 자가 현실 세계에 나타나 산자 얼굴을 지배하거나, 주체의 경험 외부에 있는 영靈이 산자의 얼굴로 인식되는 모습을 보인다, (⸀무이모아이」, ⸀파도의 파형」, ⸀파과 2」, 「늑대」, 「홍합처럼 까맣게 다문 밤의 틈을 벌려라」, ⸀콩비지가 끓는 동안」, ⸀양옆으로 길게 늘어선 거울」) 

  다음은 그림자의 상징이 들어 있는 「파과 2」를 보면서, 주체의 경험 외부에 있는 대상이 주체의 얼굴로 형상화된 모습을 볼 수 있다.  

 

      늙지 않는 언니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은 언니가

      아직도 마루에 앉아 있다

      내 얼굴을 하고 앉아 있다

     

                …<중략>…

 

      복(卜)자 모양으로 나뭇가지를 꺾어

      원을 그리고

      팔다리를 집어넣으라고 할까?

      그림자를 지워버리라고 재촉할까?

 

      언니는 아무것도 몰라

      눈꺼풀에 검은 재를 묻히러 온다

      다음날을 표시하려고

 

      흰색 붉은색

      기를 매단 대나무

      해바라기를 태운 이 집에

      누가 먼저 다녀갔다.

             -「파과 2」 일부분

 

  이 시는 인간의 원초적 체험이 주술 형태로 남아 있어 비유보다는 상징이 필요하다. ‘해바라기’의 상징은 빛과 암흑이 하나로 결합 되는 꽃이다. 암흑은 죽은 언니의 혼령이고, 빛은 사물을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는 주체의 얼굴이다. 죽은 언니의 얼굴이 주체의 얼굴로 변형되어 나타나는 것이 해바라기다. 해바라기가 피는 ‘마루’에서 언니는 주체의 얼굴을 한 채 국수를 먹는다. 국수는 언니를 향한 그리움과 모르는 과거에 대한 인식의 한 변형체이다. 비록 주체의 외부 일이긴 해도 죽은 언니는 가족이 그리워하는 대상이고, 모르는 과거를 인식하게 하는 혼靈이다. 주체는 자신의 얼굴을 한 혼령(눈거풀에 검은 재)을 지우기 위해 “복(卜)자 모양으로 나뭇가지를 꺾어/원을 그리고/팔다리를 집어넣으라고 할까?/그림자를 지워버리라고 재촉할까?” 말한다. 원 속에 팔다리를 집어넣는 행위나 그림자를 지워버리는 행위는 부정의 원리를 가진 혼령을 소멸시키기 위한 주술의 한 방법이다. 주체가 환각으로 나타나는 그림자를 지우려 하듯, 샤먼은 실제 해바라기로 상징된 언니의 혼령을 태우는 행위를 한다. “흰색 붉은색/기를 매단 대나무”가 그것이다. 주술사에 의한 그림자 제거는 주체가 샤먼의 힘으로 인간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이다. 이는 주술의 힘인 속신 세계와 인간 세계가 하나의 연결통로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그림자 상징은, 시인이 속신 세계의 주술 행위에서 벗어나 우주적 신성인 대모신의 설화 세계로 확장되어 간다. 대모신은 우리에게 자기 신체를 이용해 우주에서의 생명과 연관된 창조행위를 보여주는데, 화자의 시적 확장이 가능한 이유는 ‘거인’을 통해 신의 신비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거인」)  

 아래는 설화적 기법으로 쓴 「마고 1」 이다. 이 시를 보면, 그림자는 대모신에 의해 아기의 죽음과 소생이라는 고대적 관념이 시간의 흐름과 전혀 상관없이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美堂」, 「마고 1」, 「마고 2」)

 

      마고는 곧 저승으로 떠나게 될 아기들이 가여워

      제명과 맞바꿔 아기들을 살린다고 합니다

 

      아기의 숨구멍에 흡, 하고 입김을 불어

      군밤을 식히듯이 오른손 왼손 번갈아 둥글려

      경단처럼 된 것을 여우처럼 물고 다니는데

 

      마고의 입에서 아기의 입으로 옮겨주면

      꺼져가는 숨을 살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마고와 눈이 마주친 아기는

      경기를 일으켜 그 기억을 지우게 된다고

                               -「마고 1」 일부분 

 

 이 설화에서 성스럽고 신비한 계시는 마고가 죽은 아기를 소생시키는 일이다. 인간존재의 재생은 마고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며, 성스러운 시간의 시원이다. 비시간성을 살고 있는 마고가 “입에 넣고 훅 부는 경단 같은” ‘둥근 환’이 죽음에서 소생이라는 우주 질서의 변환점이다. ‘환’은 아기 죽음의 한 요소인 질병의 침입을 막는 수호령이고, 또한 환은 신이 성스러운 성물을 통해 우리 인간의 삶을 안전하게 보호해 주는 상징적 재생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여성의 원형인 마고를 통해 죽음에서 오는 불안을 성스러운 징표의 힘으로 막고자 한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신미나 시인의 ‘비시간성에 의한 그림자의 상징’은 속신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주술적 의미와 죽음과 생명의 연관성인 원형 차원에서의 설화적 의미가 결합되어 나타난다. 이때 그림자의 상징은 시인의 무의식과 의식에서 오는 고통이나 상처를 말하는 게 아니라, 비록 개인적이고 주관적이긴 해도 신비한 원형 세계의 생명력을 복원한다는 점에서 성화된 세계의 구현이고, 여성 원형의 가치를 드높이는 일이다. 하지만 시인이 인식하는 신의 육화는 경험 외부에 있는 가족의 뿌리와 어린시절 경험 안에서 길어 올려진 인식 정도여서 그림자의 상징인 속신 세계와 우주의 신적 세계에 대한 표현이 소박미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현대인의 파편화되고 불안한 감수성에 가족공동체 간의 소통과 여성 원형의 갈망을 한데 묶어 추출한다는 점에서 인간 본질에 대한 꾸준한 이해와 관심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다시 시집의 첫 페이지를 연다.

 

 

 ▲신미나 시인의 시집.         © 포스트24

 

 

 신미나 시인 【약력】

2007년 《경향신문》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싱고라고 불렀다』,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

□시툰: 『詩누이』, 『안녕, 해태』 등이 있다

 

 

 




 

 

 

 

 

권영옥 시인, 문학평론가

【약력】

□ 경북 안동 출생, 아주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과 졸업(문학박사)

□ 비평서 『한국현대시와 타자윤리 탐구』, 『구상 시의 타자윤리 연구』.

□ 시집 『청빛 환상』, 『계란에 그린 삽화』 , 『모르는 영역』

□ 전) 상지대, 아주대 외래교수, 현재) 《두레문학》편집위원, 문예비평지 『창』편집위원

□ <두레문학상>수상.

□ 이메일 :dlagkwn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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