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흘러가지 못하고 고여있는 그리움을 보면 조은설 시인의 시를 만나고 싶다.
그리움의 불씨 꺼내 점등을 하다
짧은 가을 해가 덧문을 걸어요 올해는 고추 당초 매울 거라는 겨우살이 한 무리의 철새들이 정든 도래지를 떠나려 해요
품속 깊이 묻어둔 그리움의 불씨 꺼내 점등을 하고 바람의 갈기엔 두 날개를 꼭꼭 비끄러매지요
한 바퀴 호수를 돌며 나이테를 감은 후 젖은 눈으로 인사를 하지만 잠시 다녀올 길, 아무도 떠난다 말하지 않아요
새벽이 오면 차렵이불 꺼내 덮어주던 물안개, 잘 익은 노을의 쇄골이 얼비치던 까만 눈동자들 수만 킬로 여행길의 연료가 될 거예요
머릿속에 그려둔 지도, 그 검은 입속으로 풍덩 풍덩 뛰어드는 철새들
한 옥타브 목울대 끌어올릴 때마다 쏟아지는 비릿한 갯내음들 물소리들 등 푸른 날갯죽지 힘껏 밀어 올려요
하얀 손톱달 하나 -- 잃어버린 아이
스물다섯 해가 천년처럼 길었다
귀퉁이가 닳거나 부서질 줄 모르는 각진 슬픔들이 어미의 두 어깨를 누르고 있다
네 살배기 하얀 손톱 달 하나 저 넓은 하늘 어디쯤 흘러가고 있을까 스물다섯 해 망각의 심연 속에 어미는 그만 뼈를 눕히고 싶지만
파릇한 새순 하나 몸부림쳐도 닿을 수 없는 살 떨리는 그리움 눈 감을 수가 없다
허공 어디쯤서 잃어버린 시간들이 홰를 치며 날아간다
【약력】 □한국일보 여성생활수기 당선 □월간문학 동화 등단 □미네르바 시 등단 □월간문학상 수상 □한국시문학회 회원 □한국아동문학회 작가상 수상 □미네르바 시문학회 이사 □시집; <거울 뉴런> 외 3권
【편집=이영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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