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 사람』김동식 수필가를 만나다

연명지 기자 | 기사입력 2022/01/17 [22:38]

『걸어가는 사람』김동식 수필가를 만나다

연명지 기자 | 입력 : 2022/01/17 [22:38]

 ▲ 김동식 수필가 수필집.                                   © 포스트24

 

▶피카소가 질투한 스위스 화가이자 조각가인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걸어가는 사람』을 생각하며 수필집을 읽었다. ‘실존의 불안을 딛고 당당하게 걸어가는 인간, 탐욕과 허영을 걷어낸, 가장 가벼운 몸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사람.’ 부서질 것 같은 조각상은 자코메티가 읽어낸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가야 한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김동식 작가의 이 수필집이 담장을 넘어 세계속으로 걸어가기를 바래본다 

 

 

▶ 수필의 길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환갑 남짓까지 자유를 압류 당하고 살았습니다. 지긋지긋한 공부와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 성인이 되면 자유가 넘치려니 했습니다. 웬걸요. 사회생활은 더 혹독했습니다. 성공과 실패, 실적과 경쟁에 부대끼는 사회생활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디디기였어요. 그래도 노력 반, 운 반으로 그리 뒤처지지 않는 삶을 살았습니다. 

회사를 떠나며 다짐했습니다. 맘껏 자유롭게 놀자고. 놀 것도 많고 놀 친구도 많더라구요. 한 5년 놀고 나니까 노는 일에도 회의가 들기 시작했어요. 가장 큰 이유는 남는 게 없다는 거예요. 잘 놀다 돌아와도 잠자리에 들 때면 늘 ‘이게 뭐지, 이게 다야?’ 이런 의문이 이는 거예요. 

어느 날 ‘책’이라는 먼 단어가 얼핏 머리를 스쳤습니다. 당장 책방으로 달려갔습니다. 책꽂이 쪽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죠. 거긴 보나 마나 골치 아픈 책들만 꽂혀 있을 것 같아서요. 잡지, 베스트 셀러가 펼쳐져 있는 매대를 훑었습니다. 인연, 우연이니 하는 관계는 대개 불가사의한 영역이잖아요. 손에 든 게 수필 잡지 세 권이었거든요. 누가 권한 적도 없고 책방을 향할 때도 마음에 둔 일이 없던 책들이었습니다.

며칠을 틀어박혀 낱낱이 읽었습니다. 못 쓴 글이 하나도 없더라구요, 비판력이 없는 내게 후진 글이라는 게 눈에 띄겠어요. 세 권 모두 정기구독 신청을 했고 1년 내내 이들을 끌어안고 살았습니다. 진짜 불가사의한, 필설로 설명할 수 없는 그런 변화의 시기를 보냈죠. 이 시기에 또 다른 변화가 찾아옵니다. ‘나도 써보면 안 될까.’라는 욕심, 아니 의욕이 바로 그 변화입니다. 집에서 가까운 분당 현대수필에 등록했고 1년 후에 등단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10년 후엔 책까지 내는 대견한 성취를 이루었습니다.

글 쓰는 일을 저는 놀이의 다른 형태라고 봅니다. 다른 놀이와 다른 점은 놀이의 결과물이 있다는 거죠. 다양한 간행물에 제 글이 실릴 수 있고 그것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남길 수 있으니 말이죠. 또 있어요. 문우들입니다. 언제 봐도 반갑고 종일 얘기를 나누어도 헤어질 땐 아쉬운 마음이 남는 글 친구들을 얻은 것.

다 수필의 길에 들어선 인연 덕분입니다. 고마운 일이죠.

 

 

▶  김동식 수필가의 수필을 소개합니다.

 

질주본능

 

택시 기사가 말한다.

“4,500원 나왔습니다.”

지갑에서 천 원짜리 다섯 장을 꺼내준다.

“잔돈은 그냥 가지세요. 수고하셨어요.”

차 안과 밖의 온도차로 잠시 숨이 막히는 듯하다. 몇 걸음 옮기며 무심코 왼쪽 바지주머니를 만져본다. 도톰한 부피로 감촉되어야 할 지갑이 없다.  맙소사. 옷에 붙어 있는 주머니란 주머니를 더듬어대는 손길이 황급하다. 어디에도 지갑은 없다. 급히 쫒는 내 눈길에서 택시는 골목길을  꼬부라져 사라지고 있다. 뛴다. 숨이 턱턱 막히는 열대야 속을 무조건 뛴다. 

다소간의 현찰. 이것들 없이는 나 자신조차 증명할 길이 없는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밥집이든 술집이든 먹고 마시고 쓱 내밀기만 하면 두 손 모아 받아들이는 신통력의 카드 두 개. 이런 소중한 것들을 갈피갈피에 간직하고 있는 지갑. 

나는 택시가 사라진 방향으로 좁은 보도를 따라 열대야 속을 질주한다. 땅거미 지는 거리엔 도시의 불빛이 밝아오고 있다. 퇴근길을 서두르는 사람들, 힘들었던 하루를 한잔 대포로 달래려 뒷골목을 기웃거리는 월급쟁이들 사이를 누비며  달린다. 영화 속의 민완형사? 이 나이에 민완형사는 무슨. 처음엔  반사적으로 뛰었다. 내 물건을 되찾아야 한다는 소유본능 때문이었을 거다. 뛰며 생각은 소유본능을 벗어난다. 현금 은 이미 관심 밖이다. 신분증과 카드를 잃은 후의 위험도 마음에 걸리지만 그 성가신 수속절차가  싫어 뛰는 것이다.  분실신고, 재발급 신청으로 시간을 쓰고 기다리고 하는 일은 너무 억울하다. 땡볕 속에 은행, 동회, 경찰서로 뛰어다닐 일이 끔찍하다. 

이백 미터쯤 달렸을까. 숨이 턱에 차고 다리에 힘이 풀린다. 순간이지만 달리며 승산에 대한 계산이 나름대로 서 있었다. 택시는 내가 내린 곳에서 사백여 미터 남짓 되는 분당롯데백화점 동쪽 정문쯤에서 대기할 것이다. 그곳엔 늘 빈 택시 몇 대가 줄 서 있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내가 그 거리를 달리는데 2분이 걸린다면 택시는 30초도 안 걸려 그곳에 도착할 것이다. 택시가 1분 30초만 대기한다면 성공이다. 

계산과 현실은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 이백 미터, 1분도 채 안 돼 주저앉게 생겼으니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멀리 백화점 구름다리 밑에 파란 빈차표시등 2개가 어렴풋이 보인다. 틀림없이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다시 뛴다. 그러나  마음뿐이다, 다리는 이미 힘이 풀려 있었다. 잰 걸음으로 목표를 향해 간다. 가도 가도 빈차 표시등은 아득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에이, 까짓 거 포기하자. 이러다간 내게 큰 탈이 날 수도 있지.' 나이 모르고 일심으로 뛰다가 축구장에서 세상을 등진 옛 배우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깟 지갑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목숨과 바꾸랴. 

한 오십여 미터 더 갔을까. 택시 두 대 중 한 대가 U턴을 해 돌아온다. 길 건너편을 지나는 택시를 향해 손을 흔들며 “택시, 택시”하고 고함을 치지만 차는 길 건너의 나를 지나친다. 기사는 오른쪽 보도의 손님만 살피지 길 건너 쪽은 보질 않는 모양이다. 아, 저 차에 내 지갑이 들어앉아 있다면? 온몸의 힘이 빠져 주저앉고만 싶다. 다행히 빈차 표시등 하나는 그대로 서 있다.  이제 백오십여 미터의 거리, 삼사십초만 더 달리면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택시여 제발 기다려다오. 기운을 차려 처음 시작한 속도로 다시 뛴다.

이제 지갑은 더 이상 목표가 아니다. 평생 금기로 삼아온 ‘포기’를 받아들일 수 없어서이다. 그깟 삼사십초의 뛰기를 마다하고 희망을 포기한 채 빈손으로 돌아서는 것은 있을 수 없다. 40여 년의 회사생활을 하며 시작부터 성공이 보장되어 있던 일이 언제 있었던가. 시작은 언제나 막막했다. 뛰면서 희망을 보았고 난관에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성취에 이르지 않았던가. 이건 사회생활과는 무관한 사소한 개인의 사건임으로, 나이가 들었음으로, 숨이 참으로, 이런 구실들로 주저앉으면 그 포기의 상처가 두고두고 남을 것이다. 

오십 미터쯤 남은 것 같다. 빈차 표시등이 뚜렷이 시야에 든다. 속보로 걸어도 20초면 닿을 것이다. 그 순간, 모든 희망이 와르르 무너진다. 택시가 앞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기다려도 손님이 없어 다른 데로 떠나는 모양이다. '이젠 모두 끝났구나. 그래 가라.' 소진된 기력으로 떠나는 차를 따라 잡을 가능성은 완전 제로다. 

운이 좋아 훗날 지갑이 돌아온다면 돌려준 그 사람이 고마울 것이고, 그런 고마운 사람이 살고 있는 이 사회가 아름답다고 칭송하리라. 안 돌아오면 그뿐, 나의 실수를 탓할지언정 사람이나 사회를 원망하지는 않으리라.

헐떡이면서도 시선을 떼지 않고 있던 그 택시가 앞으로 주춤주춤 가다가 U턴을 한다. 그리곤 내 집념의 자력에 끌리듯 내게로 다가온다. 나는 찻길을 건너 뛰어 택시가 올 차선에 버티고 선다. 두 손을 마구 흔들며. 차는 내 앞에 섰고 나는 차문을 연다. 운전기사 얼굴을 확인한다. 잠시 전에 얼핏 본 얼굴인데 분명치가 않다.

“좀 전에 저 쪽 코너에서 내린 사람인데요. 저 알아 보시겠어요?”

“글쎄요, 잘 기억이 안 나네요.”

“아, 왜 사대강 얘기하며 왔잖아요.”

“아, 예. 그런데 왜 차를 급히 세우는 거죠? 어딜 또 가시려구요?”

“그게 아니고 제가 아까 요금을 드리고 지갑을 차에 놓고 내린 것 같아서요. 혹시 지갑 못 보셨어요?”

“지갑이요? 손님 자리는 보지도 않았는데요. 잘 찾아보시죠.”

말하는 동안 나는 어둑한 차 안, 내가 앉았던 자리를 더듬고 있다. 의자 위, 바닥 모두를 뒤졌는데도 지갑은 보이지 않는다. 천신만고 끝에 내가 탔던 차를 붙들었는데 안에 있어야 할 지갑의 종적이 없다니. 이젠 어찌해야 하나. 

“기사님, 차 안엔 없는 것 같네요. 내가 내린 곳 근방의 길바닥에 떨어뜨렸을 지도 모르니 나와 함께 그곳으로 갑시다.”

내가 내린 지점으로 돌아왔다.

“잠간 찾아보고 올 터이니 꼼짝하지 말고 여기 서 계세요.”

 택시 문을 열어 놓은 채 급히 근방을 살펴본다. 아무데도 지갑은 없다.  한탄을 하며 택시 쪽으로 돌아온다.

“기사님, 길바닥에도 없네요. 차 안을 다시 한 번 볼 게요”

“빨리 하세요.”

나도 참 질긴 사람이다. 무슨 가능성이 있어 이미 확인한 차 속을 다시 뒤지려든단 말인가.

“어, 여기 내 지갑. 찾았어요.”

지갑은 의자와 문 사이 공간에 비스듬히 누어 입을 반 쯤 벌린 채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까는 불빛도 없는 데서 의자 위와 발 놓는 부분만 보았을 뿐 문 사이는 지나쳤다. 지금은 길 옆 상가에서 비치는 불빛으로 그 위치가 비춰져 지갑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성취에 뒤이어 오는 허탈감과 함께 잠시 잊었던 더위와 피로가 몰려 왔다. 얼굴이라도 씻을 생각으로 길가 호프집에 들러 생맥주 한 잔을 주문해 놓고 화장실을 찾았다. 거울에 낯선 얼굴 하나가 지친 눈길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나기를 맞은 듯 후줄근한 입성에 땀으로 얼룩진 벌건 얼굴, 헝클어진 머리카락... 물끄러미 들여다보던 내가 낯선 그에게 말한다.

“모양이 흉하네. 네 몸에 밴 ‘질주본능’이 이젠 미덕도, 자랑도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해. 지갑 아니라 더한 것을 잃었다 해도 뛰지 마. 하나둘 잊어가는 것, 뭔가 잃어버리는 것들, 이젠 별난 일이 아니야. 의연한 자세를 잃지 않도록. 얼굴 씻어. 그리고 머리도 단정히 빗고 돌아가. 시원한 맥주가 기다리고 있잖아. 애썼어.”

 

 




 

 

 

 

 

 

 

  ▲김동식 수필가

 

〔약력〕

□ 경북 안동 출생

□ 서울고, 서울 상대 졸업

□ 현대전자 부사장, 삼미 사장 역임

□ 『현대수필』등단

□ 일현회 회장, 『에세이피아』 발행인 역임

□ 수필집 『걸어가는 사람』

□ 제 3회 수필미학문학상 수상

 

 【편집장=이지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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