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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 모르게 새가 태어난다』 최서진 시인을 만나다.

연명지 기자 | 기사입력 2022/01/08 [18:37]

『우리만 모르게 새가 태어난다』 최서진 시인을 만나다.

연명지 기자 | 입력 : 2022/01/08 [18:37]

 ▲ 최서진 시인.                                             © 포스트24

 

▶최서진 시인을 만나면 유난히 크고 예쁜 눈과 마주하게 된다. 그 큰 눈을 들여다 보면 사람에 대한 애틋함으로 가득하다. 시인과 애틋함 사이에 새가 웅크려 어깨를 떨고, 우리만 모르게 시인의 긴 속눈썹이 젖는다. 시인은 새와 새의 관계로 가득한 하늘에게 묻는다 “진짜 이름이 뭐예요? ”

 

가까이 가는 순간 날아가 버리는 새는 늘 말을 아끼고, 시치미를 떼고 다시 다가가 손을 내밀면, 아무도 모르게 손 안에서 새가 태어난다. 이 시집을 통해 시인과 세상 사이에 수많은 새의 은어가 태어나길 바래본다. 

 

Q : 『우리만 모르게 새가 태어난다』 시집을 지배하는 정서는 무엇인가요       

A : 시집을 지배하는 정서는 슬픔입니다. 생명 있는 것들 속에 무늬를 새긴 비애의 리듬들이 마침내 저마다의 슬픔의 색을 피웁니다. 떨어지는 나뭇잎이 남아 있는 나뭇잎에 스며드는 사랑. 제 시집 속에는 그런 새가 많이 나옵니다. 새는 모두 자기만의 속도로 날아와 색을 드러냅니다. 있는 그대로 삶의 그늘을 이해하고 숨 막힐 듯 인간의 삶을 뒤척이면 다양한 색으로 달라지는 물방울, 저기 사람이 지나갑니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운명을 살아내느라 얼마나 치열한지요. 그런 슬픔의 정서를 시집 속에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Q : 최서진 시인의 시가 시작되는 지점은 어디인가요

A : 세상 어디에도 없는 길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시가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이 길은 오직 자신이 만들어내야 하므로 유일한 길입니다. 소멸해 가는 시간 위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사유와 상상의 층위를 날고 싶습니다. 문득, 한 번도 만나지 않은 단어의 꽃들을 충돌시켜 낯설고 의미 있는 허공을 만들어내고 싶습니다. 인간의 근원적 슬픔 같은 것을 독특하고 어안이 벙벙하게 뒤흔들고 싶습니다. 무수한 헛발질로 아무도 알지 못하는 아몬드 나무의 고독을 누설하는 것이 저에게는 시입니다. 부서진 시간을 잘려나간 손톱처럼 만지는 일은 아픕니다. 무언가 대단한 것을 떠오르는 구름 속에 놓고 나온 것처럼 그 시간을 다시 그려내는 것.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예술의 세계. 그 세계로 진입하기 위한 무수한 성찰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 가장 애정이 가는 시 2편을 소개해 주세요

    

          자정의 심리학자

 

     사람을 만나면 어항 속 같은 슬픔을 알게 된다

 

     조금 더 멀어졌다 쏟아지는 별

 

     무수한 빛깔을 알아볼 수 있도록 심리학을 읽는다

 

     표정만 봐도 안다는 당신들의 말은 주저함이 없다

 

     먼 곳에서 사람이 오는 것을 빗소리처럼 듣는다

 

     어깨 너머에도 얼룩이 있다

 

     전쟁과 수렵이 적나라하게 기록되는 밤

 

     우리가 다 함께 이 긴 터널을 통과할 수 있을까

 

     기마에 뛰어났지만 그래도 가장 슬픈 건 나일 것이다

 

     그것이 내가 자정에 어항을 청소하는 이유다

 

     밤새도록 닦고 또 닦는 것이 나에게 잘 어울린다

 

     물고기가 숨죽이고 물고기를 분석하고 있다, 먼 오해로부터

 

     우리는 이렇게 함께 살고 있다

 

 

          홍매화, 그 붉음에 대하여

 

     언니의 오래된 결혼식 비디오에는

     죽은 할머니가 걸어다닌다 

     죽은 아버지가 걸어다닌다

     심장이 있는 흉터의 모양으로 

 

     홍매화 송이 숨소리처럼 바스락 피어난다

     지워진 손금마다 서로의 비밀이 붉어진다

     영원한 사랑이라는 말을 외우다 혼자 어두워진다

 

     화면에서는 고무풍선이 아직도 터진다

 

     공중에 뜬 죄를 필사하듯

     막다른 시간 앞에서 연기처럼 사라지는 불빛들

     불빛은 환할 때가 가장 슬픈 목숨 같다 

 

     지금은 다른 방향의 밤하늘 아래 

 

     죽은 사람과 살아 있는 사람이 농담을 주고받으며

     백 년의 숨을 들이마시며 

     우리는 서로 다른 잠을 자고 있다

     매화가 어디선가 혼자 피는 줄도 모르고

 

     언니가 비디오에서 느리게 걸어 나온다

     나는 이런 생을 살아 본적 있다

 

 - 추천사 

언제 어디선가 최서진 시인과 스친 적이 있다. 지적이며 우아한 사람이 주는 인상은 차분했고 어느 한편 뜨거웠다. 어제오늘은 그의 시를 읽으며 내밀한 정신의 내레이션에 결기가 있음을 느낀다. 신비한 신중함이다. “속도주의자”(「눈보라 아이」)인 우리의 현재를 저 먼 곳으로 데려다 놓으며 능숙하게 잘 삭힐 줄 아는, 그리고 그 먼 곳에서 현재의 격정마저도 맑게 편집하는 재주가 믿음직하다. 시 세계의 지층을 울리며 흐르는 그녀의 울음 뭉치를 알아챈 것은 이 시집을 두 번 아껴 읽고 나서였다. 그래, 우리가 하늘과 공기 없이는 살 수 없듯 울지 않고는 누구도 살아갈 수 없겠지(실제로 시인의 반쪽은 슬픔으로 차 있다). 시인은 자신과의 내밀한 대화와 질문을 통해 인류 비밀의 실마리를 풀어내려는 자일 것이므로 이제부터라도 시의 방향을 같이해도 되겠느냐 묻고 싶다. 그것이 최서진 시인에게 동의를 구해야 할, 원래의 시인들이 탐험해야 할 목적지인 “인간의 방향”(「밤새도록 호밀밭」)이겠다. 그렇다면 시인들은 지금 어디쯤에 있으며 시인들이 탄 “회전목마가 도착하는 곳은 어디일까”(같은 시). 최서진 시인의 지적인 악보의 진행을 보다 보면 악상의 원천이 마치 새가 그려 놓은 듯한 점선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눈에 들어온다. 시인의 시야는 온통 고독한 점선들로 가득하다. 그렇게 그의 시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것들과 사랑에 빠지고 있음을, “사람은 깨지기 쉬우”(「먼 불빛, 내 노을을 만지듯」)므로 고독과 사랑하거나 동시에 불안과 연애하고 있음을 노래한다. 생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들의 목록의 재구성을 통해 분명 우리가 어딘가로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음이 이 시집이 이뤄 낸 성과일 것이다. 세상의 피부를 벗겨 내 재생해 낼 줄 아는 시인이 있어 이 땅의 시의 숲이 풍성해진 느낌이다.

                      ―이병률(시인)

 

 

 



 

 

 

 

 

 

 

 ▲최서진 시인 

 

 〔약력〕

□ 2004년『심상』등단. 문학박사. 

□ 시집으로 『아몬드 나무는 아몬드가 되고』, 『우리만 모르게 새가 태어난다』가 있다. 

□ 2018년 서울문화재단 창작기금 수혜. 2019년 문학나눔 우수도서 선정. 

□ 김광협 문학상을 받았다.

 

 【편집=이영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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