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공간의 ‘새’ 이미지 탐색 (4)

기러기 ⓶, 한 상 훈 (문학평론가)

이영자 기자 | 기사입력 2022/01/03 [10:45]

문학공간의 ‘새’ 이미지 탐색 (4)

기러기 ⓶, 한 상 훈 (문학평론가)

이영자 기자 | 입력 : 2022/01/03 [10:45]

           

 ▲기러기.                                                                                                 © 포스트24

 

                                  문학공간의 ‘새’ 이미지 탐색 (4)

                                              -기러기 ⓶

 

                                                                                                     한 상 훈 (문학평론가)

 

기러기 2편에선 일본소설, 고전소설, 현대시 2편을 소개하려고 한다. 우선 일본 근대문학의 대표적 작가인 모리 오가이(森 鷗外, 1862∼1922)의 장편 『기러기』를 감상해 보자. 이 소설은 화자인 ‘나’의 35년 전에 있었던 젊은 시절의 이야기다. 

그 당시 하숙집에서 가까이 지냈던 친구인 의대생 오카다의 사랑에 대한 에피소드로, 오카다는 동네를 산책할 때마다 얼굴을 보게 되는 예쁜 여자가 있었다. 그렇다고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는 것이 아니라, 오카다가 산책하는 중에 그녀의 집을 지나가게 되어 있는데, 그때 그녀가 창문을 열고 내다보는 것이다. 매번 그런 식으로 스치게 되니, 오카다는 2주가 지난 후엔 친근감도 들고 해서, 보게 될 때마다 모자를 벗고 인사를 하곤 했다. 그러면 어딘지 쓸쓸해 보이는 그 여자(스에조의 첩)도 밝게 웃곤 했다. 

그녀의 이름은 오다마로 가난한 엿장수의 딸인데,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깊은 그녀는 재물이 넉넉한 스에조에게 첩으로 들어갔다. “오다마는 아버지를 행복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 외에는 어떤 목적도 없었기에 완고한 아버지를 설득하다시피 하여 첩이 되었다.” 하지만 시집간 이후에, 그 남자가 고리대금업자란 걸 알고 무척 실망한다. 중매쟁이 할멈의 소개로 갔는데, 첩이긴 해도 본처가 죽었다는 말도 거짓이었다. 스에조는 아이들이 있는 본처의 집에 가있고 어쩌다 오다마에게로 오는 것이었다. 거기에다가 스에조가 사람들에게 인색하고 못되게 구는 정도가 매우 심했다. 오죽하면 오다마의 하녀가 생선을 사러 갔는데, 그 가게 여주인이 사채꾼 첩 따위에겐 팔 생선이 없다고 전하라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보단 자기의 운명을 탓할 정도로 착하고 마음이 여린 여자였다. 그러나 애정이 없는 남편과의 생활이라, 항상 쓸쓸함이 얼굴에 묻어나곤 했다. 

 

그러한 그녀는 가끔 창밖을 볼 때 거리를 지나가는 학생들을 부러운 시선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저 사람들 중에 혹시나 믿음직한 이가 있어 나를 지금의 처지에서 구원해주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녀는 그러한 생각이 무의식중에 들었다가 스스로 깜짝 놀라곤 한다. 그런 중에 바로 창밖에서 자주 눈에 띈 오카다에게 마음을 두게 된 것이다. 어느 날 오다마의 집에 있는 새장 속에 뱀이 들어가 창밖으로 구원을 요청을 하는데 마침 지나가던 오카다가 이 상황을 보고 도와준 것이 계기가 되어 두 사람 사이가 각별해진다. 

“오카다가 뱀을 퇴치해준 날의 일이었다. 오다마는 지금까지 눈으로만 인사를 나눈 오카다와 가깝게 말을 나누게 되자 자신도 놀랄 정도로 마음이 급격하게 변화된 것을 느꼈다.” 

 

오다마는 그가 새를 구해준 이후 고마움으로 하녀를 통해 어떤 선물을 보낼까 고민을 하고 편지도 써볼 생각도 한다. 그녀는 그에 대한 그리움으로 나날이 설렌다. 그러다가 그녀는 창밖으로만 그를 만날 것이 아니라, 직접 그를 만나 말을 걸어볼 것을 다짐하고, 미장원에 가는 둥 예쁘게 단장을 하고, 집 밖에 나가서 기다린다. 그 시각에 ‘나’는 옆방의 오카다를 불러 함께 산책을 한다. 산책하는 중에 오다마가 서있는 모습을 발견했는데, 평소와 다르게 “눈부신 아름다움”을 지닌 여자의 시선이 오카다의 얼굴을 보고 있었으나, 오카다는 당황해서 모자를 벗고 인사만 하곤 빨리 걸음을 서둘러 자리를 피한다. 

집안에만 머물며 바깥 출입을 꺼렸던 오다마가 예쁘게 화장을 하고, 집 앞에서 오카다를 만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행위는, 그녀로선 매우 적극적으로 애정 표현을 한 것이다. 그런데 정작 오카다는 오다마 못지않게 마음속으로 그녀를 좋아했지만 가볍게 인사만 하고 냉정하게 돌아선 것이다. 어차피 그녀와는 이루어지지 못할 사랑이기에 오카다가 미리 단념한 것일까. 구체적으로 오카다의 내면세계는 드러나지 않는다. 단지 ‘나’의 시선으로 그를 무겁게 바라볼 뿐이다. 

그 시기에 오카다는 외국으로 유학을 준비 중이었고, 아마 복잡한 여자 문제로 얽히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작가는 어쩌면 오카다라는 캐릭터를 통해 자기의 젊은 시절의 방황을 보여준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에 대한 사랑의 욕망이 뜨거웠음에도 차가운 태도를 보인 오카다를 ‘나’는 비겁하게 생각한다. 

며칠 후, ‘나’와 오카다가 연못으로 가는 도중에 친구 이시하라를 만나 함께 동행한다. 연못 주변에는 갈대가 무성했다. 

“이 짙은 갈색 줄기 사이를 뚫고 거무스레하게 반사되는 물 위로 십여 마리의 기러기가 느긋하게 오가고 있었다.” 

 

거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 소설의 제목인 ‘기러기’가 등장한다. 이 새는 제목으로 설정할 만큼 작가에겐 문학적 장치로 매우 중요한 소도구라 할 수 있는데, 그것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작가의 세계관과 더불어 주제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시하라가 오카다에게 연못 위의 기러기가 있는 데까지 ‘돌멩이’가 날아갈까 하고 물어본다. 그러고 나서 기러기를 맞춰보라고 한다. 

오카다는 기러기가 불쌍하다며 주저한다. 그럼 이시하라가 던지겠다고 하니, 오카다는 자기가 던지겠다고 말한다. 오카다의 속마음은 기러기 근처로 돌을 던져, 그 새들을 도망가게 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그런 의도를 갖고 던진 오카다의 돌멩이가 아이러니하게 기러기 한 마리의 머리에 정확하게 맞아버린 것이다.

이 장면을 매우 유의해서 볼 필요가 있다. 작가의 의도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즉, 여기서 맞아 죽은 ‘기러기’는 오다마를 상징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오다마는 가난한 아버지를 위해서 고리대금업자인 스에조와 마음에 없는 첩살이를 하는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여자다. 

이와 같이 불우한 그녀의 삶은 많은 기러기 중에 하필 도망가라고 던진 돌멩이에 맞은 ‘새’의 인생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더구나 세 친구 중 오다마가 오카다에게 연정을 품었으나 그 마음을 외면한 그의 돌멩이에 맞은 것은 ‘사랑’에 실패한 그녀의 비극적 삶을 암시한다. 

친구 이시하라는 돌멩이에 맞아 떠있는 기러기를 보며, 조금 후에 날이 어두워지면 가져와서 기러기 고기를 대접하겠다고 말한다. 이시하라는 날이 어두워지자 친구들을 망보게 하고, 옷을 벗고 연못에 들어가서 죽은 기러기를 들고 온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오카다의 외투 속에 기러기를 감추고, 셋이서 이시하라의 집으로 간다. “나와 오카다는 그날 밥 이시하라의 집에 밤늦게까지 있었다. 기러기를 안주로 술을 마시는 이시하라의 술친구를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작가 모리 오가이는 이 소설을 통해 냉정하고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근대 젊은이의 자화상을 오카다를 통해 그려낸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기에 주인공 오카다는 본의 아니게 죽인 기러기조차 연민을 가지고 대하는 것이 아니라 술안주의 요리로 기꺼이 먹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나’에게 특별한 말도 없이 유럽 유학을 떠난다. 

 

     ‘달 밝은 가을 밤에 기러기들이 

     찬 서리 맞으면서’

 

     집으로 간다.

     지난 겨울 어린 보리 잎 쪼아 먹고

     날갯죽지 파릇해진 선배들도

     줄지어 퇴근한다.

 

     두고 온 깃털이나, 떠나보낸 부리들

     먼 곳에서 흔들리며 춥지 말라고

     바삐 바삐 둥지에 닿아 

     온몸으로 군불 지피는 사람들.

 

     온돌이 조금씩 데워지는 동안

     깨금발로 처마 끝 바라보는 모습 뒤로

     거울 속 나무 기러기 한 쌍

     찡긋하며 마주 보고 눈을 맞춘다.

               -고두현, 「기러기나라」 전문

 

‘기러기 아빠’를 모티프로 그린 시다. 오늘날 우리 경제가 이만큼 우뚝 선 것은 우리나라 부모 세대의 교육 열풍 덕분이라는 말을 부정하긴 힘들다. 어쩌면 치맛바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광복 직후 유행했던 ‘북청 물장수’란 말엔 자식 세대에 대한 부모의 아름다운 희생을 담고 있다. 이러한 정서가 20세기 후반부터 우리 사회에 몰아쳤던 ‘기러기 아빠’의 조짐을 일으켰던 것. 

요즘 젊은 세대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노년에 접어든 베이비 붐 세대들은 “달 밝은 가을 밤에 기러기들이/ 찬 서리 맞으면서”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악착같이 회사에 충성하고 때로는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야근도 주저하지 않았다, 회사 상사에게 잔소리를 듣곤, 그 스트레스로 술 한 잔 걸치기도 했을 것. 

하지만 기러기 아빠들은 멀리서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들을 상상하면 힘이 절로 났다. 그러나 그것은 좋은 소식이 들릴 때 이야기다. 조기유학의 보람도 없이, 미국에서 적응을 못해서 아이들이 낙오하는 경우도 있고, 상상외로 돈이 많이 들어가 말못할 고초를 겪는 경우도 있었다. 

유학간 아이들을 뒷바라지 하기 위해 아내마저 따라간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러다가 부부간의 파열음까지 나타나기도 했다. 요컨대, 보듬고 감싸주어야 할 가족이 해체되어 ‘기러기 아빠’인 가장은 홀로 어두운 도시에 남아 실존적 고독에 빠져드는 것이다. 이 시에서 “두고 온 깃털이나, 떠나보낸 부리들”은 바로 홀로 남은 가장의 외로운 정황을 보여주는 것이다. 중년이 되어 남들처럼 살만해질 무렵 겪게 되는 소외감은 말로 다하기 힘들 정도였을 것. 기러기 아빠들의 이러한 풍경은 어쩌면 시보다 소설이 더 생생하다. 

 

정미경(1960~2017)의 단편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에서 홀로 남은 ‘기러기 아빠’는 남들처럼 잘난 아이들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하다. 미국적 정서에 잘 적응된 아이들과 소통이 되지 않고, 장기간 헤어진 아내와도 이혼하게 된다. 그는 원룸 아파트에 산다. 재산도 조기 유학에 드는 비용으로 거의 다 처분해서 가진 것도 별로 없다. 중년의 나이에 애틋한 사랑엔 별 관심이 없다. 마침 같은 아파트에 거주하는 젊은 간호사를 우연히 만난다. 미국으로 가버린 아내와도 이혼한 마당에 오직 섹스파트너로서 그 여자를 주기적으로 만나는 것뿐이다. 그러하니, 그 공허가 얼마나 채워지겠는가. 어느 날 남자는 마룻바닥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진다. 그것도 며칠이나 지나서 회사 사람들에 의해 발견된다. 

고두현(1963~)의 시에서도 그러한 슬픔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시인은 홀로 남은 ‘기러기 아빠’의 쓸쓸함을 다정한 “거울 속 나무 기러기 한 쌍”과 대비시키는 것이다. 가족을 위해 “온몸으로 군불 지피는 사람들”이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상처만 깊어진다. 

이와 같이 ‘기러기’를 소재로 쓰여진 시가들이 주로 변방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쓸쓸한 삶의 풍경을 보여준다. 하지만 오세영(1942~) 시인의 「기러기」는 이와 다르다. 

 

     달 밝은 가을 밤,

     일제히 대오를 갖춰

     하늘마당을 나는 기러기 떼,

     일렬로 정연히 줄을 맞춰

     깨끗이 빗질하는 거리의

     미화원들 같다.

          -오세영, 「기러기」 부분

 

이 시의 ‘기러기’는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들을 깨끗이 청소하는 “거리의 미화원들”로 아름답게 표현된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으며/ 오갈 때를 분명히 아는 새,”로 형상화되고 있는 것이다.

오세영의 ‘기러기’는 이웃들에게 봉사한다고 너스레를 떨지 않는다. 조용히 자기의 분수를 지켜가며 오염된 공간을 ‘청정무구’하게 만들 줄 아는 바람직한 인간형이다. 또한 그 새는 “정연히 줄을 맞춰” 하늘을 날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러기’는 푸른 하늘을 날아갈 때  대오의 질서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다. 이동할 때 가장 경험이 많은 기러기를 선두로 하여 V자 모양으로 높이 날아가는 데, ‘서열과 질서’를 상징한다고 한다. ‘안항’(雁行)이란 말은 여기에서 유래된 말이다. 

예전에, 기러기는 위치 파악을 잘하기 때문에 ‘비둘기’처럼 통신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기러기의 그러한 특성을 잘 살린 고전소설을 살펴보기로 하자.

 

기러기가 금각전 난간을 날개로 치며 고성을 지르더니 성의의 앞에 들어와 앉으며 목을 늘여 슬피 울더니 고개를 들어 성의에게 몸을 부대끼니 성의가 그제서야 자기가 기르던 기러기가 온 줄 쾌히 알고 급히 두 손으로 기러기를 덥석 안고 온 몸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리며 울고 말하기를,

 “네가 이제 나를 찾아 여기 오니 반드시 중전께서 승하하셨도다.”

말을 마치자마자 기러기 목을 안고 기절하니 좌우의 시녀들이 급히 구완하는데, 공주가 신기함을 이기지 못하여 자세히 살펴보니 기러기 다리에 한 통의 서찰이 매어 있거늘 바삐 끌러 보니 겉봉에, ‘안평국 국모는 내 아들 성의에게 부치노라’ 하였다. 공주가 보고 속으로 놀라 왕공자인 줄을 알고 위로하여 이르기를,

 “기러기가 다리에 서찰을 매고 왔으니, 공자는 정신을 진정하소서. 내가 뜯어 보겠습니다.”

   -『적성의전』에서, 이헌홍 역주, 고려대학교민족문화연구소

 

『적성의전』은 작자 및 창작 연대를 알 수 없는 국문 고전소설로,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효성과 형제들 간의 우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주인공이 무엇인가를 찾으로 떠나는 ‘탐색주지(探索主旨)’의 구조를 지닌 이야기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강남 안평국의 왕자 성의가 어머니인 왕비의 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일영주’라는 신비의 약을 구하기 위해 서역으로 떠난다. 거기에서 온갖 고난과 위기를 겪은 후에 왕위를 계승하게 되는 해피엔딩의 소설이다. 

윗글은 왕비인 어머니가 아들 성의의 생사를 몰라 ‘기러기’ 다리에 편지를 매어 날려 보낸 후에, 성의가 받아 보게 되는 대목이다. 눈 먼 성의는 어머니의 서찰의 내용을 공주에게서 듣고 나서, 눈을 뜨게 된다. 그리고 다시 기러기를 통해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낸다. 이처럼 『적성의전』에서 ‘기러기’는 모자간에 반가운 소식을 주고받는 중요한 소통의 수단으로 표현되었다.  

 

 



 

 

 

 

 

 

 

 

 

 

▲한상훈 문학평론가 

 

  【약력】

□ 서울 출생, 1986년 《현대문학》 평론 추천 

□ 평론집 『꽃은 말을 하지 않지만』 『현대소설과 영화의 새로운 지평』

□ 『문학의 숲에서 새를 만나다』 『아웃사이더의 시선』 등을 출간하였다.

□ 경기문인협회 평론분과 회장 역임.

□ 한국문인협회, 국제펜 한국본부 회원 hansan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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