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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속의 초현실 (9)

수필 읽기 (조재은 수필가 )

이지우 기자 | 기사입력 2020/10/31 [21:11]

현실 속의 초현실 (9)

수필 읽기 (조재은 수필가 )

이지우 기자 | 입력 : 2020/10/31 [21:11]

                                            현실 속의 초현실 

 

                                                                                                  조 재 은  수필가

 

어른들은 20대를 좋은 시절이라 한다. 나는 그 말을 인정 할 수 없었고 오히려 생활과 생각이 안정된 부모의 나이가 부러웠다. 이상은 언제나 키를 넘어 높이보다 더 깊게 좌절했고, 욕망은 끓어올라 사방으로 뻗어 한 발짝 내딛고는 놀라서 발을 빼곤 했다. 과연 좋은 시절인가를 수없이 자신에게 물었다.


예술을 향한 열정으로 사는 딸 친구가 있다. 
그 아이는 건축, 그림과 영화에 심취하고 있었으나 딸 셋의 맏이라는 책임감 때문이었는지 무역학과를 갔다. 그 아이가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꽃잎이 날고 상상의 푸른 잎이 피어났다. 졸업 후 영화를 안 하고는 못 견디어서 영화 제작 현장에 뛰어들었다. 영화를 찍으며 너무 힘들어 털썩털썩 주저앉을 즈음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결혼과 함께 가슴에서 뿌리박고 있던 공부를 향한 열망. 부부는 유학을 결심했다.  


낮과 밤 두 곳에서 죽도록 일하며 유학비를 마련해 영국에 유학을 갔다. 머리는 새로운 건축이론에 시달리고 몸은 아르바이트에 지치고. 좋은 공연을 보기 위해 라면이 주식이 되었다. 그래도 공연을 본 후에는 감동으로 눈물 흘리며 자취방에서 라면봉지를 매일 뜯어도 행복했다. 얼굴은 뼈만 보이게 말라도 밤하늘 검푸른 색이 몇 가지로 변하는지, 런던의 안개 냄새가 얼마나 신비한지를 전했다. 귀국 후에 생활에 쫓기고 수없이 이사하고 작은 전셋집을 마련했다.


노희경의 드라마에서 ‘젊어서 힘들겠다’란 말을 들으며 그 아이 생각을 했다. 지금 그 아이는 꿈이 현실에 용해되는 어려운 과정을 겪고 있다. 꿈이란 알맹이는 생활의 거친 물결 속에서 여기저기 부딪치며 휩쓸려 가고 있다. 모호한 미래 앞에서 꿈과 현실의 타협점을 찾아가며 미로 속에서 출구를 찾고 있다. 미로는 아스팔트가 아니라 때로 넘어지고 가시에 찔리며 피 흘리는 험한 산길이다. 유학이 끝나도 길은 멀었고,   귀국 후 살 집을 꾸미고 메일을 보내왔다. 남산 기슭의 작고 작은 집에서.
 
  …저희 집, 3층은 무형의 강한 표현력을 가진 음악을 품고 사는 제 동생부부, 2층은 눈으로 만져지는 존재론적 표현의 영화를 꿈꾸며 사는 저의 부부, 1층에는 손으로 생의 아름다움을 실현하는 사돈부부가 삽니다. 그 풍경은 르네 마그리트의 중절모를 쓴 비슷한 사람이 수없이 그려져 있는 그림처럼 각기 다른 빗방울의 모습으로 한 가족을 만들어 가고 있는 듯합니다.

 

차분한 성격에 시나리오를 쓰는 시간이 많은 남편 방은 안정적인 풀색 벽지와 달빛화이트 벽지를 발라 눈부신 하늘과 들을 만들었습니다. 제 방은 그리스의 화이트와 화려한 블루의 느낌을 사랑하는 저의 취향을 따라 트왈블루 벽지로 완성되었습니다. 연푸른 벽지 안에 어셔의 끝이 없는 건축물을 연상시키는 작은 구조물이 있어 더욱 흥분되었습니다. 3층 주인집은 남산의 산장을 구현시킨 목재패널로 인해 따뜻함이 있고 넓게 트인 창이 있어 늘 여행을 떠나는 분위기입니다.…

 

메일에 그려진 방 모습은 아름답다. 그보다 더 빛나는 것은 어떤 환경에서도 아름다운 것을 찾아내는 그 아이다. 벽지값과 고르는 과정을 아는 나는 자기 집을 평화로운 유럽의 맨션으로 표현하는 그 아이의 목소리에 가슴이 찡하다.

 

 ▲ 르네 마그리트의  '골콩드'(겨울비).     © 포스트24


그 아이가 그곳으로 집을 정하고 가장 좋아한 것은 창가에서 볼 수 있는 그림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아이 방 작은 창을 열면 신세계 백화점 외벽에 그려진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골콩드’가 보인다. 그림을 보는 순간 온몸에 기쁨의 전율이 흘렀다고 한다. 르네 마그리트. 그 아이가 좋아하는 화가다. 그러나 집을 고르는데 창문에서 보이는 그림 때문이라니. 후에 소식은 부엌에 붙인 찬장이 떨어져 그릇이 깨졌다는 소식이다.


많은 사람이 백화점이 완성되면 어떤 명품과 상품이 들어올까. 물건 값은 어떨까 생각한다. 그런데 이 아이는 공해로 찌든 도심 한가운데 공사 중인 건물을 가려 놓은 그림을 보고 감동한다. 힘든 현실에서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꿈을 간직하고 세상에 반항하지 않으며 자신을 지켜나가는 모습이 눈물겹다.


현실과 싸우는 전쟁에서 이 아이의 무기는 닦여진 감성과 열정을 잠시 접는 지혜다. 산보다 큰 컵에 구름을 담고, 다리 위에 깊은 눈빛의 사자와 날개 달린 남자를 한 화폭에 그리는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현실에 살며 초현실적인 생각으로 생활과 꿈을 조화시키는 아이와 닮았다.  

모든 것에 흔들리며 마침표를 하나씩 찍는 시기에 느낌과 물음으로 사는 젊음.  그의 현실과 초현실의 푸름이 슬프게 아름답다.    

 

 

 

 

   

     ▲ 조재은 수필가

 

 [약력]

 □ 이메일: cj7752@hanmail.net

 □ 전) 『현대수필』 주간, 편집장, 『월간문학』 편집위원, 한국펜클럽 이사
     현) 『현대수필』자문위원 『에세이포레』 편집위원
 □ 작품집 <시선과 울림>2006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도서 <하늘이 넒은 곳> <삶, 지금은 상영 중>  <에세이 모노드> 

 □ 구름카페문학상', '일신수필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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