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옥 문학박사의 현장 시평(7)

「천둥」, 김경주 시인

이지우 기자 | 기사입력 2020/10/19 [21:10]

권영옥 문학박사의 현장 시평(7)

「천둥」, 김경주 시인

이지우 기자 | 입력 : 2020/10/19 [21:10]

                  

사진=신미숙                                                                                                © 포스트24

 

                              권영옥 문학박사의 현장 시평(7)


                                                                                          김경주 시인

                                              「천둥」


                    천둥은 구름 속을
                    혼자 다닌다
                    하얗게 질릴 때까지

                    들개의 혀에 닿아

                    나는 누군가의 얼굴 하나
                    기억하지 못한다
                    누군가 불을 피우면
                    그 속으로 들어가
                    얼굴을 얻고 싶다
                    불은 나보다 차갑다

                    내가 가진 빈 봉투들은 춥다
                    너의 사옥은
                    門이 여러 개지
                    나는 하수도를 통해
                    너의 빛나는 정원에
                    도달하는 길도 안다

                    그러나
                    단 몇 초의 키스와
                    단 몇 개의 촛불과
                    단 몇 분의 비행은
                    나에게 전선(戰線)이다

                    당신이 모르는 자연으로
                    나는 하얗게 질려가

                    얼어 죽은 사슴의 아랫배를
                    핥는 들개들 천둥은

                    들개의 혀에 닿아

                    죽은 사슴의 아랫배에
                    잠들어 있는 새들이 놀란다

                    누군가를 벼랑으로 밀고 태어난
                    소문처럼

                    나는 몸이 가렵다
                    곧 나그네는 뛸 것이다
                                                   -「천둥」, 『고래와 수증기』 전문

 

 

시인의 감각은 예민하다. 그 예민함 때문에 시인은 예술성 깊은 시를 낳는다. 시각, 후각에 뛰어난 박목월 시인은 시에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을 그림으로써 인간이 살아가는 당위적 진실을 말했고, 서정주 시인은 “사향 박하의 뒤안길에서 아름다운 배암”을 시각화 하는 데서 무의식의 분열 양상을 보였다. 오규원 시인은 만물의 흔들림에서 느끼는 공감각을 통해 생의 가능성을 타진했다. 이처럼 인간의 감각이란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이는 운동성을 내포하고 있다. 


김경주 시인의 「천둥」의 경우, 초자연적 현상이 내는 천둥은 소리의 판이다. 이 천둥은 자연물인 들개의 혀 속에 닿아 정신을 마비시킨다. 그로 인해 시인(들개)은 수행적 기능이 축소되고, 말이 미끄러지게 된다. 결국 천둥이라는 초자연적 소리가 시인의 혀(말, 언어)에 닿았다는 건, 자신의 말이 큰소리에 속박당한 채, 공포에 질려 있다는 걸 암시한다. 그로 인해 시인은 “누군가의 얼굴 하나 기억하지” 못하고 상징질서에서 소외된 존재가 된다. 소리를 잃어버린 시인은 “누군가 불을 피우면 그 속으로 들어가” 본연의 얼굴을 얻고 싶어 한다. 그가 욕망하는 것은 얼굴이라기보다 ‘자신의 본래 소리(말)’이다. 달리 말하면 지금 시인은 ‘없는 소리’와 ‘빈 봉투’라는 텅 빈 기표로 작용한다. 


그러나 타자는 시인의 욕망과 달리 “사옥의 ‘문’이 여러 개” 있어 세계의 존재들과 소리(말)를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다. 본연의 소리를 사멸 당한 시인은 ‘하수구’인 욕망을 통해 상징질서의 “빛나는 정원”으로 가는 길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상징질서란 즉각적이고 순간적인 ‘키스’, ‘촛불’, ‘비행’ 등과 같은 현대성의 미끄러지는 기표이다. 그렇기에 시인은 이 기표들을 전선(戰線)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소리(언어)에 소외된 시인은 타자들만의 언어로 소통되는 상징질서를 넘나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척도 없이>) 또 이 상징질서의 말이란 “누군가를 벼랑으로 밀고 태어”나는 것과 같다. 그렇기에 시인은 “당신이 모르는 자연으로 ”하얗게 질려가“는 동기가 되고, 이 상징질서에서 나그네로 뛸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결국 시인이 있을 곳은 상징질서의 외곽이다. 이 곳은 얼어 죽은 사슴들이 있고, 들개들의 천둥, 즉 시인들의 큰소리가 있는 곳이다. 이 천둥은 그들의 ‘혀’에 닿아 잠들어 있는 ‘새들’을 깨어나게 한다. 잠에서 깨어난 새는 ‘의식의 고양’을 뜻하며, 이 야생적 들개의 소리는 시인이 몸담고 있는, 즉 잠재성의 세계를 일깨우는 각성 역할을 한다.

 

김경주 시인의 소리는 얼어 죽은 사슴의 배 안에서 잠자는 새들을 깨어나게 하듯이, (「새 떼를 쓸다」, 「오로라」, 「시인의 피」) 자신과 시인들에게 의식의 고양과 상상력을 회복하게 한다. 하지만 자신과 달리 상징질서의 중심부를 살아가는 타자는 몇 개, 몇 초, 몇 분의 순간적이고, 즉각적인 몸짓, 즉 운동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힘의 유동성은 사회, 정치, 문화에서 현대성의 제반 특징이다. 그렇기에 상징적 질서의 밖에서 야생적 존재로 살아가는 시인에게 현대성은 전선(戰線)으로 구축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시인의 야생적 소리는 상징질서 외곽의 말이고, 언어이다. 결국 김경주에게서 소리란 시인들의 의식 고양과 함께 새가 상승하고, 하강하고, 전나무가 상승하고 (「오로라」) “능선이 걸려있고 찔레꽃이 피어나는”(「세 때를 쓸다」) 자연물의 운동성으로 발현된다.

 

 

[김경주 시인 약력]
▶광주 출생, 서강대학교 철학과를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창작협동과정에 대본 및 작사 전공, 2003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2016 <동아일보> 희곡 당선,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기담』, 『시차의 눈을 달랜다』, 시작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과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권영옥 문학평론가

 

 [권영옥 약력: 시인, 문학평론가]
 □ 경북 안동 출생, 아주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과 졸업(문학박사)
 □ 시론서 『한국현대시와 타자윤리 탐구』, 『구상 시의 타자윤리 연구』.
 □ 시집 『청빛 환상』, 『계란에 그린 삽화』 (경기문화재단 창작기금 수혜)
 □ 전 상지대, 아주대 외래교수, 현재 《두레문학》편집인, 문예비평지 『창』편집위원

 □ <두레문학상>수상.
 □ 이메일 :  dlagkwn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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