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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산책 12, -시공간의 ‘감나무’

한상훈 문학평론가

이영자 기자 | 기사입력 2024/10/18 [14:04]

문학산책 12, -시공간의 ‘감나무’

한상훈 문학평론가

이영자 기자 | 입력 : 2024/10/18 [14:04]

                                             문학산책 12

                                              -시공간의 ‘감나무’

 

 

                                                                                               한 상 훈 문학평론가 

 

 

 

참 늙어 보인다

하늘 길을 가면서도 무슨 생각 그리 많았던지

함부로 곧게 뻗어 올린 가지 하나 없다

멈칫멈칫 구불구불

태양에 대한 치열한 사유에 온몸이 부르터

늙수그레하나 열매는 애초부터 단단하다

떫다

풋 생각을 남에게 건네지 않으려는 마음 다짐

독하게, 꽃을, 땡감을 떨구며

지나는 바람에 허튼 말 내지 않고

아니다 싶은 가지는 툭 분질러 버린다

단호한 결단으로 가지를 다스려

영혼이 가벼운 새들마저 둥지를 틀지 못하고

앉아 깃을 쪼며 미련 떨치는 법을 배운다

보라

가을 머리에 인 밝은 열매들

늙은 몸뚱이로 어찌 그리 예쁜 열매를 매다는지

그뿐

눈바람 치면 다시 알몸으로

죽어 버린 듯 묵묵부답 동안거에 드는

-함민복, 「감나무」 전문

 

사물에 대한 성찰이 놀랍다는 것은 이러한 시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함민복(1962~)의 이 시는 ‘감나무’를 세상살이에 도통한 ‘도인’(道人)에 빗댄 것이다. “참 늙어 보인다” 직설적인 말투로 첫 행을 장식한 이 시는 시골에서 흔히 보게 되는 감나무의 외관에 대한 느낌을 그대로 보여준다. 

 

첫 행이 감나무의 전체적 모양의 감상을 드러냈다면, 그 다음부터는 세부적 모습의 형태에 가까이 다가간다. “멈칫멈칫 구불구불”이란 첩어는 감나무가 쭉 뻗어 있는 것이 아니라 휘어지고 늘어지고 울퉁불퉁한 나무의 형태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도인이기에 “태양에 대한 치열한 사유에 온몸이 부르터”있는 모습으로 비유되어 있다. 잔가지는 과감히 분질러 버리고 “영혼이 가벼운 새들”은 감히 둥지를 틀 엄두를 내지 못한다. 생에 대한 깊은 사색과 철학을 지녔기에 “풋 생각을 남에게 건네지” 않고, 쓸데 없는 허황된 소리를 내지 않는다. “늙은 몸뚱이로 어찌 그리 예쁜 열매를 매다는지”처럼 알차고 가치 있는 결실을 이룬 후엔, “눈바람 치면 다시 알몸으로/ 죽어 버린 듯” 모든 사심을 버리고 지내는 것이다. 

 

이러한 시인의 진술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아가는 소시민적 현대인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더 큰 그림으로 본다면, 민족을 바르게 이끌어나갈 정치가들이 탐욕과 정략적 논쟁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미래에 대한 비젼을 확고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서민들에게 상처와 절망을 주고있는 현실을 역설적으로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는 부조리한 사회와 혼돈의 현실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큰 인물인 ‘도인’의 출현에 대한 기다림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30년 가까이

내 뜰 한구석을 차지하고

나와 함께 살아온 감나무가

올해는 해거리를 하느라

감이 많이 열리지 않았다.

그래도 쉰 개 남짓 탐스럽게 익어

두 개 또는 세 개씩 짝을 이루어

가지 끝에 달려 있다.

잎이 질수록 그것들은 더 잘 눈에 뜨인다.

서리가 내리고 잎이 지고나면

까치밥으로 몇 개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다 따 들일 것이다.

내 뜰은 내가 소유한 유일의 땅,

거기서 사십 개 남짓 감을 수확하는 것이

올해의 내 가을걷이의 전부이지만, 

나는 어느 대지주 못잖게 흐뭇하고 뿌듯하다.

그것만으로도 내가 풍요를 만끽하기에 충분하니까.

-김종길, 「감나무를 바라보며」 전문

 

시인은 내 곁에서 함께 살아온 나무에 대한 애틋한 정과 달관의 삶의 경지를 차분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감이 많이 열리지 않았다”해서 시적 화자는 안타까워하거나, 나무에 대한 불만스런 감정을 조금도 지니고 있지 않다. 그냥 “해거리를 하느라” 그렇겠지 하면서, 고개를 끄덕거리고 오히려 만족스럽게 받아들인다. 

 

이러한 삶의 자세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노력한다고 쉽게 얻어지는 생의 지혜도 아니다. 젊은 사람이라면 답답하고 무능한 인간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김종길(1926~2017) 시인은 1950년대 중반,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을 잘 표현한 「성탄제」로 등단했고, 「감나무를 바라보며」는 2008년도에 발간된 시집 『해거름 이삭줍기』에 실려 있는 작품이다. 그러니 그 사이의 시간의 간극이 엄청나다. 그만한 세월을 보냈고, 인생사를 겪었으니, 세상의 모든 이치를 자연의 순리로 받아들이고, 그 질서에 순응하는 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 것이다. 

 

“나와 함께 살아온”이란 표현처럼 ‘감나무’는 화자의 삶이며 시인의 분신이다. 비록 오십 개 정도의 감이 열린, 보잘 것 없는 나무의 작은 뜰을 소유하고 있지만, ‘대지주’ 못지않다는 시인의 마음에는, 약간의 허위나 가식이 담겨져 있지 않다. 독백하듯 진솔하게 말하는 시적 화자의 어조에 시인의 진정성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얼마 안되는 그 감이 ‘가을 걷이’의 전부인데도, 시인은 “서리가 내리고 잎이 다 지고나면/ 까치밥으로 몇 개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다 따들일 것이다.”라는 구절처럼 ‘까치’를 위해 몇 개는 남겨둘 정도의 마음의 여유마저 보이고 있다. 낙천적 여유가 마냥 행복해 보인다. 이 시의 바탕에는 오랜 세월 인생을 살아온 시인의 당당함과 느긋함이 깔려 있다.

 

감나무 저도 소식이 궁금한 것이다

그러기에 사립 쪽으로는 가지도 더 뻗고

가을이면 그렁그렁 매달아놓은

붉은 눈물

바람결에 슬쩍 흔들려도 보는 것이다

저를 이곳에 뿌리박게 해놓고

주인은 삼십 년을 살다가

도망 기차를 탄 것이

그새 십오년 인데……

감나무 저도 안부가 그리운 것이다

그러기에 봄이면 새순도

담장 너머 쪽부터 내밀어 틔워보는 것이다 

-이재무, 「감나무」 전문

 

고향과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은 누구나 가슴 뭉클하게 다가올 것이다. 이 시는 그리운 고향의 서정을 단순히 노래한 작품이 아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감나무가 있는 시골집 ‘주인’은 고향에서 삼십 년을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떠나가 버렸다는 이야기. 그래서 어떻게 됐다는 것인가. 주인이 떠난 고향의 빈집은 쓸쓸하기만 하다는 것. 그것도 벌써 15년이 지났으니 그 적막함이 어떨지 짐작이 간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상황을 누가 말하고 있는가. 바로 ‘감나무’가 시적 화자이고 이 시의 주체인 것이다. 그 지점에 이 시의 독특함이 있다. 

 

사람이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질 수밖에 없는 것은 자연의 기본적 질서다. 이재무(1958~) 시인은 고향의 감나무와 주인의 이별을 통해, 우리 문학의 전통적 정서인 기다림과 외로움의 정서를 노래하고 있다. 가을이 되면 붉은 감이 주렁주렁 열리고 있는 시골의 풍경. 반평생을 주인과 같이 살아온 ‘감나무’가 떠나간 주인의 소식이 그리워, “담장 너머 쪽부터 내밀어 틔워보는 것이다”에 이르러 이러한 ‘이별’의 정서가 극점을 이루면서 절묘하게 형상화되고 있다. 

 

좀 더 미시적으로 접근해 보자. ‘붉은 눈물’이나 ‘도망 기차를 탄 것이’란 구절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물론 ‘감’에 내포된 ‘눈물’의 이미지나 ‘주인’이 ‘도망 기차’를 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무엇 때문인지 이 시에선 확연히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시공간의 정황으로 볼 때, 세상살이의 말 못할 어떤 서러움이 내재되어있다는 뜻이다. 요컨대, 이 시는 변두리적 삶을 살아온 농촌 사람들의 고난이나 슬픔이 작품의 밑바닥에 관류하고 있어, 낭만적인 시골의 서정을 사회학적 관점에서 들여다보게 한다.

 

 ▲한상훈 문학평론가.                                   © 포스트24



<약력>

서울 출생, 1986년 《현대문학》 평론 추천 

평론집 『꽃은 말을 하지 않지만』 『현대소설과 영화의 새로운 지평』

『문학의 숲에서 새를 만나다』 『아웃사이더의 시선』 등을 출간하였다.

경기문인협회 평론분과 회장 역임. 한국문인협회, 국제펜 한국본부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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