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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옥 문학박사의 현장 시평(46) 신용목 시집 (『우연한 미래에 우리가 있어서』, 문학과 지성2024)

돌과 새와 재로 상징되는 한 도시

이영자 기자 | 기사입력 2024/09/11 [09:08]

권영옥 문학박사의 현장 시평(46) 신용목 시집 (『우연한 미래에 우리가 있어서』, 문학과 지성2024)

돌과 새와 재로 상징되는 한 도시

이영자 기자 | 입력 : 2024/09/11 [09:08]

  © 포스트24

 

신용목 시인의 시집에서 한 가지 잊지 않고 탐사되는 주제는 ‘돌’과 ‘새’와 ‘재’로 상징되는 오월, 도시 한복판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아무 날의 도시』에서 이 주제는 상실의 도시를 온몸으로 체험한 의식적인 일이다. 새로 출간된 『우연한 미래에 우리가 있어서』에서 한 도시를 폐허로 만든 집단의 폭력성은 시인의 현실적 삶을 계속 간섭하기에, 시인이 시편에서 정신적 활동을 관조하고 탐사하는 특성을 드러낸다. 주체가 없는 상실된 도시는 시인에게 상처가 되고, 내면화되어, 시의 주제화가 된다. 시인이 광주에서 경험한 원체험이나 추체험은 자신의 전의식에서 삭제되어 날아가지 않고, 꿈과 환상, 그리고 농담으로 나타난다. 먼저, 꿈에서는 또 다른 현실을 만날 수 있는 퇴행적 우회로를 통해 시인은 소망을 완성하려 하고, 환상에서는 상식적 합법성에서 일어나는 특정 도시 환경에 대해 기괴하고 가학적인 질서 파기로 나타난다. 불쾌를 반감하고자 하는 꿈과 달리 농담은 정신의 고통에서 해방되고자 쾌락에 기여하는 반어다. 이러한 시인의 정신적 활동에는 원인과 비규정적인 무언가 결합되어 있다. 원인에는 폭력적인 집단의 불신이 들어있고, 또 그 심리는 무의식에 영향을 미쳐 억압된 내면을 더욱 고통스럽게 한다. 억압된 무의식을 해방하거나 구원하고자 시인은 꿈과 농담 그리고 환상에 천착하게 된 것이다. 시인이 폭력적인 한 도시의 사건으로 인해 생긴 정신적 활동의 문제에 대해 상상력과 구체적인 이미지로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먼저, 정신적 활동 중에서 ‘꿈’과 ‘잠’으로 이루어진 시를 살펴보고자 한다. (「토키 영화」, 「미래 중독」, 「대여된 잠」, 「앵무새 둥지」, 「부여라는 곳」, 「목항」 등) 이 시편에서 나타나는 ‘꿈’과 ‘잠’은 무의식의 검열과 억압뿐인 부정적인 현실을 회피하고자 하는 정신과의 합일점이고, 시인이 이 합일점을 끌어내고자 하는 것은 알 수 없는 자아를 찾아가고자 하는 표현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실은 자아이고, 꿈은 자아를 소멸시켜서 얻은 은폐된 소원의 지향이라고 할 수 있다. 

 

      내 방 손잡이에는

      침묵이, 자신을 부드럽게 돌려 책장처럼 넘겨줄 순간을

      기다리며

      어둠이, 하단에 찍힌 쪽수처럼 달려 있다 나는 늘 같은

      페이지를

      펼쳐두고 있다

 

      늘 같은 꿈에서 깨어난다

 

      문을 닫아두고 있다

 

      이제 다 끝난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 시간에 있고 잠에 

      서 깨고 난 뒤에도 깨지 않는 꿈이 있고,

      오래전의 이야기로부터 오늘에 도착한 다섯 시를

      오후가 받아내고 있다

 

       방 안의 어둠이 이야기 속에서 침묵을 모으고 있다.

                                                                        - 「앵무새 둥지」 일부분

 

 이 시에서 방의 어둠은 ‘책 하단에 찍힌 쪽수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끝이 안 보이는 어둠은 오월 한 도시에서 일어난 처참한 상황을 상징한다. 시인이 기억하는 집단의 폭력성은 항상 그 페이지에 멈춰있다. 이는 시인의 꿈으로 변용되고, 희망을 반감하는 꿈은 다시 잠에서 계속 꿈을 꾸기에, 시인이 폭력적인 집단에 가까이 갈 수가 있다. 근접이란 폭력적이고 부조리한 집단의 응답을 현실 세계에서는 끌어올 수 없다. 하지만 꿈에서는 그들의 응답을 들을 수 있다. 그렇다면 잠을 깨우는 것은 무엇이고, 깬 잠 속에서 똑같은 꿈을 꾼다는 것은 또 무슨 의미인가? 이 사건은 비록 오래전에 일어난 항쟁이긴 해도 시인에게는 아직 “끝나지 않은 시간”이고, 그때 보낸 시간은 “오늘 도착한 오후 다섯 시를 받아내고 있”는 것처럼 생생한 상처이다. 이를 통해서 보면, 시인은 계속되는 꿈을 통해 현실이 아니라 또 다른 현실을 보고 싶은 것이다. 이를테면 집단 세력이 자신들의 죄업을 용서해달라고 비는 그런 소망 말이다. 그러나 방의 어둠은 부조리한 집단의 억압으로부터 시인의 정신이 매여 있다는 뜻 아닌가?  

시인이 이웃을 향해 문제의 담론을 펼칠 수 없고, 이를 장안의 화젯거리로도 삼을 수 없다. 다만 미래를 위해 그는 “이야기 속에서 침묵”을 끌어모으고 있다. 이것이 현실 이외의 현실이 되어 소원성취를 하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이 시는 집단 세력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동시에 소원성취에 의한 시인의 내면 정화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잠이나 꿈 이외에도 시인은 폭력적인 집단의 억압에 대한 우회로로 ‘농담’을 탐색하고 있다.

 

      이곳은 텅 비어 있어, 아무것도 없는 방이라면

      이게 적당해.

      주무관이 건넨 명패에는 ‘진담의 방’이라고 적혀 있었다.

      농담이죠? 나는 물었고

      진담이야!

      나는 주무관이 건넨 명패를 달지 않았다. 진담 속에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

      덕분에 나는 승진했다.

 

     농담의 방에서 근무한다. 새로 온 인턴이 더워요. 그래서

     에어컨을 켜지 않았다. 하루가

     물속이었다.

 

     ……<하략>……

                                                                    

                                                                      -「분실물 보관소」 일부분

      

 이 시에서 나타나는 농담은 실없는 소리로서 시인의 고통스러운 삶을 구제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농담이 반어적 아이러니 효과를 거둔다. “텅 비어 있는 진담의 방”을 보고 시인은 농담이냐고 물었을 때 주무관 덕분에 승진한다. 외양의 알라존이 진담의 방이라고 말하는 데 반해 내면의 에이런은 농담이냐고 묻는다. 말과 행동이 모순된 언어적 아이러니는, 시인이 억압받는 무력 집단으로부터의 탈출이고, 해방이다. 이점에 대해 프로이트는 “농담을 압축, 치환, 간접적 표현이라고 한다” 주무관과 시인의 대화처럼 이 시에서 농담은 고백적 언술을 취하는 게 아니라, ‘너와 나’, ‘나와 우리’ 등 대화에 의한 사회적 관계를 요구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농담은 현실 참여적이고, 사회를 정화하는 것이 주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진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인 시인은 인턴이 덥다고 해도 “에어컨을 켜지 않”아서 둘은 하루종일 물속 같은 땀을 흘린다. 그러한 행동에는 주체가 주체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대상화된 주무관이 ‘진담의 방’이라고 명명해도 시인은 ‘어둠의 방’으로 들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의와 진리가 없는 텅 빈 진담의 방을 본 시인은 농담을 통해 모순된 사회를 간접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농담’으로 사회의 경직을 풀고자 했던 시인에게 과거의 기억은 자신의 정신 활동과 삶을 계속 지배하고 있다. 그 기억은 집단 세력의 갑작스러운 무력 출몰이었으며, 그들이 한 도시의 질서를 파기한 이후 시인의 정신성에 설명할 수 없는 기괴한 일이 침입 해 온다. 그것이 환상이다. 「델몬트 유리병」에서 환상은 뒤에 오는 순차적 환상으로 나타난다.

 

     병원 옥상에 올랐을 때였다 하얀 침대 시트가 아름답게

     펄럭였고 비행기가 고요 속에 떠 있었다 나는 델몬트 유

     리병을 손에 들고 있었다 따서 흔들어서 따라 주려고 따

     서 흔들어서 따라 주려면 잠시 울어야 했다 뜨거운 바람이

     불고 조용히 엠블런스가 들어왔다 주차장을 보았고 소방

     대원을 보았고 그의 손을 보았다 그의 손에 들린 또 다른

     손을 보았다 엠블런스에서 내린 소방대원이 잘린 손을 들

     고 구석구석을 델몬트 유리병이 놓여 있는 건물 안으로 들

     어 갔다. 

                                                                      -「델몬트 유리병」, 일부분

 

 이 시의 마지막 연은 시인의 독특한 경험을 전제로 하는 환상시이다. 환상시는 시인에게 ‘공포’를 느끼게 한다. 시인이 공포스러운 존재의 감정을 느낄 때 환상은 일어나는데, 담을 수 없는 델몬트병에 “잘린 손을 소방대원이 들고 있”는 모습이 기괴하고, 우주를 델몬트 유리병으로 보고 그 속에 하얀 침대 시트와 비행기가 들어있는 모습은 마치 르네 마그리트의 초현실주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시인은 델몬트 병마개를 “따서 흔들어 주려면 잠시 울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런 데서 이 시는 더더욱 가학적이다. 타자들의 일련의 행위를 본 시인은 ‘집단의 폭력성’에 대해 공포를 느낀다. 시인이 “어느날 툭 던져진 그물/ 핏줄에 걸려 우리가 자신의 몸” (「북해어」)이 된 상태라고 할 때, 시인은 더더욱 그들의 그물망에 억압되어 있다. 이 시행들에서 보면 환상은 전혀 다른 소재를 한 시 안에 배치해서 고정관념을 무너뜨리는 낯설게 하기의 특징을 보인다. 비실재성과 초현실적 환상을 통해 시인은 ‘어둠의 방’으로부터 솟구치는 공포와 불안감, 거기에서 오는 감정을 그대로 무의식의 정신성에 담고 있다. 따라서 그날 죽거나 상처 입은 사람들을 실어나르는 기괴한 병원 모습은 시인의 ‘불안’과 ‘공포’의 감정을 가장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환상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신용목 시인의 『우연한 미래에 우리가 있어서』 속을 유영해 보았다. 심해는 깊고 고요하다. 그런 가운데서도 시인의 정신성은 고통스럽다. 현재 검열받을 대상이 사라졌음에도 시인은 ‘새’와 ‘돌’과 ‘재’였던 그날에 억압된 그물망에서 뛰쳐나오지 않고 있다. 아니다 벌써 뛰쳐나와 정신적 활동이 자유롭다. 그러므로 시인의 시편에는 그날의 상실과 폭력이 ‘돌’과 ‘새’와 ‘재’라는 상징과 이미지의 변용을 거쳐 ‘돌을 만드는 시간’(「광주」) 에 있는 것이다. 돌은 불을 담고 있고, 불은 빛과 횃불을 상징한다. 『우연한 미래에 우리가 있어서』 이 시편은 신용목 시인이 자신을 비롯한 한 도시인들의 정신사적 고통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듯하다. 예전 시인들이 왜 시인한테 시대의 견인차 역할이라고 명명했는지를 신용목 시인을 보면 알 것 같다.  

 

 ▲신용목 시인 시집                 © 포스트24


                                                    

〚신용목 시인 약력〛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과

□2000년 작가세계 신인상 수상을 통해 작품활동 시작

□시집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 『아무 날의 도시』,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 『나의 끝 거장』, 『비에 도착하는 사람들은 모두 제시간에 온다』 등이 있다.

 

 

 ▲권영옥 문학평론가          © 포스트24

 

 

〚권영옥 시인, 문학평론가 약력〛

□아주대 대학원 국어국문과 졸업(문학박사)

□2003 『시경』작품활동 시작, 2018 『문학과사람』 평론 연재

□비평집 『한국현대시와 타자윤리 탐구』, 『구상 시의 타자윤리 연구』,

  평론집 『비시간성에 의한 그림자 시학』

□시집『청빛 환상』, 『계란에 그린 삽화』, 『모르는 영역』

□전)상지대, 아주대 외래교수, 문예비평지 『창』편집장, 《포스트24》시평 연재 중

□<두레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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