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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옥 문학박사의 현장 시평 (44) 장이지 시인타자들과의 소통, 꿈 그리고 욕망-『편지의 시대』 (창비사, 2023)
권영옥 문학박사의 현장 시평 (44) 장이지 시인
타자들과의 소통, 꿈 그리고 욕망-『편지의 시대』 (창비사, 2023)
장이지 시인이 6번째 시집 『편지의 시대』를 출간했다. 시집에서 시인이 설파하고자 하는 것은 ‘편지’이다. 시인은 편지로 타자들과 진심 어린 소통을 하고자 한다. 소통은 나 혼자 말하고, 나 혼자 편지를 쓰는 게 아니다. 사회공동체에 대한 의사전달 목적을 위해 필요하고, 인간과 인간 간의 정보 교환을 위해 필요하기도 하다. 그런데 세계 속의 타자들이 문화적 요소든 상호관계에서든 말과 언어를 통해 소통하기를 주저하는 언어 단절 현상을 보인다. 그 때문에 시인은 타자들에게 소외감을 주는 사회현실 속의 언어 질서를 비판하고 있다. 소통의 단절은 타자들을 무림 고원에 갇히게 하고, “언어를 잃어가는 작은 인형”으로 만들며, 텅 빈 허공에서 무지의 시간성을 견디게 한다. 타자와 타자가 마주쳐 이해하고, 언어로 공감하는 것이 소통이고 보면, 시집에서 화자와 타자 간의 편지 왕래는 현실에서 최상의 언어 소통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편지의 시대』에서 화자는 왜 타자들과 소통할 수 없는가? 소통 부재에서 오는 문제는 실로 다양하다. 우선, 타자는 유령이기에 화자에게 흔적 없는 상처를 준다. 화자가 타자에게 편지를 쓰면 쓸수록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냄새가 나고, 상처의 통점을 남긴다. 또 하나는 사회현실에서 대타자, 즉 아버지는 화자에게 언어보다 텔레파시로 소통하고자 한다. 그 때문에 화자는 아버지와 언어 분리와 단절 상태에 놓여 있다. 그로 인해 언어의 무의미함을 깨닫는 화자, 그는 언어 중심화의 경험을 해체해 버린다. 화자에게서 편지는 죽음처럼 텅 빈 세계의 통신 방법이고, 환상으로 이루어진 비현실적 대화 수단이다. 이를 역으로 말하면, 언어가 없는 편지는 “고통조차 지워지지 않는 고통”이고, 미래 또한 희망 없는 기표의 흔적에 불과하다. 화자는 현실 세계의 언어 소통방법에서 꿈과 연결된 비현실 세계의 언어 소통방법으로 변이 양상을 보인다.
대관람차의 형해(形骸)가 방치돼 있다 칠이 벗겨진 말들 이 막사 안에서 선잠을 잔다 하늘은 붉게 타오르는 태엽 장치가 망가진 인형이 편지를 쓴다 돌아앉아 쓰고 있다 뒷 모습으로도 편지가 젖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유원지> 일부분
당신의 잠에 몰래 찾아가 당신 얼굴을 가만히 보다가 옵니 다 당신이 눈뜨면 나는 불타오르고 나는 행복해지면 안 되 는 사람이라서 당신 눈을 피해 수변(水邊)을 거닐거나 당신에게 하고픈 말을 물 위에 적어봅니다 우레는 물 아래 내려가 쉬고 우레는 물빛 봉투 안에서 잠들고 우레를 깨우면 안 돼, 우레를 깨우면 모두가 타버리니까, 물 아래 잠든 우레, 중얼거리다 중얼거리다가 당신이 잠들면 당신 잠에 -<물 아래 편지> 일부분
이 시에서 화자는 편지쓰기 방법을 사회현실에서 무의식의 환상세계로 자리바꿈한다. 즉, 대관람차의 벗겨진 말들이 환상세계에서 잠들어 버리는 상황을 의미한다. 현실 세계에서 대관람차의 말들이 벗겨져 있다는 것은 화자가 언어 행위를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방치된 대관람차는 어린 화자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의 또래 문화가 상실된 것이고, 말들이 선잠을 잔다는 것은 말을 배워야 하는 화자가 언어 학습 시기에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언어를 쓸 수 없는 인간의 정신은 환상 상태에 있는 유아와 같은 것이다. 이 상태에서 화자의 언어가 자신 내부로 들어온다고 해도 화자는 결코 ‘편지’를 제대로 쓸 수 없다. 그런데도 화자는 비현실적 세계에서 사랑하는 타자와 편지로 소통하고자 욕구를 드러낸다. 이때 환상의 촉발점은 “붉게 타오르는 하늘”이다. 환상의 세계에서 화자는 객관적 상관물인 “망가진 인형”과 자신의 감정을 동일시한다. ‘망가진 인형’은 화자의 어린 시절 이전에 미분화된 덩어리이다. 그런데도 화자는 인형을 사랑하는 타자로 연상해서 그녀가 “돌아앉아서 편지를 쓰고 있다"고 하고, 더욱이 그녀의 뒷모습이 “젖어 있다”라고 말한다. 이것으로 봐서, 화자와 타자는 대화가 아니라 소통의 부재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화자의 소통 부재는 사회질서에서뿐만 아니라 환상 세계에서도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미끄러지게 된다. (「통화」) 또 하나, 화자에게서 편지란 ‘욕망’의 산물이다. 욕망은 사랑하는 타자와 ‘소통’할 수 없어서 생기는 언어의 결핍이다. “그러니까, 저는 당신을 찾을 기억이 없고, 당신과의 추억이 없고, 지금 당장 제가 몸에 당신 이름을 쓰면 당신이 제 앞에 나타나는 동굴벽화의 요술 같은 것이 필요해요”라고 하는 말이 그것이다. (「러브레터」) 즉 화자가 보내는 편지는 죽은 애인에게 쓰는 것과 같아서 ‘애인’이 편지를 직접 받거나 직접 읽을 수가 없다. 화자의 편지를 다른 타자가 대신 받아서 읽게 된다. 그리워하는 타자의 손에 편지가 직접 닿지 않았기 때문에 화자는 소통의 부재로 인해 언어 결핍을 느낀다. 거기에는 ‘거인 같은 아버지’가 화자와 타자 사이에 등장함으로써 둘은 더 이상 사랑할 수 없고 소통할 수도 없다. 이러한 타자의 심리를 반영한 투사물이 ‘풀’이다. 풀의 확장은유는 ‘사금파리’와 ‘햇살’의 유사성으로 드러나는데, ‘사금파리’와 ‘햇살’은 화자를 사랑이 아니라 공격하는 존재가 되어 찌른다. 화자는 편지의 대상을 마음에서 거둠으로써 욕망은 기표 아래로 미끄러지게 된다.
외톨이 신(神)이 편지를 띄운다. 우리는 받을 수 없고 답장 을 쓸 수 없는 편지이다 「체리 향기」에는 자기가 판 구덩 이에 들어가 눕는 남자가 나온다 어떤 위로도 그를 살게 할 수 없다 체리 향기는 여전히 말풍선 안에 있다 -「체리 향기」 일부분
심리적 동일성을 느끼는 외톨이가 외톨이 신에게 편지를 띄우고 있다. 마음으로 타자를 그리워하며 욕망하는 화자가 거인 아버지로 인해 이젠 편지를 “받을 수 없고 답장을 쓸 수도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체리 향기」에 누운 남자가 쓴 편지는 말풍선 안에 갇히게 된다. 화자 역시 그녀에게 편지를 쓰지 못하고 소통하지 못한 채 자신의 무의식에 억압하고 있다. 그래서 시인이 “너는 내 안의 어둠에서 왔거나 구멍을 메우는/알 수 없는 곳에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사랑을 말하는 것」, 「이피게네이아의 꿈」,「구름이 깊어 알 수 없는 곳」, 「엽서」,「저 멀리」, 「롱 러브레터」, 「외워버린 편지」) 한편, 화자는 사랑하는 어머니와 나 사이에 ‘거인’ 아버지가 들어오면서 어머니와 이별하고 아버지의 요구를 따라 현실을 가능케 하는 언어 질서로 들어온다.
러시아 인형처럼 어머니를 열어보면 내가 있다 아버지를 열어보면 내가 있다 그분들은 거인이다 나는 아주 작다 나 는 열어볼 수 없는 맨 마지막 인형이다 아주 작은 인형이다
……<중략>……
아버지는 내 시를 궁금해 하신다 어머니는 내 시를 궁금해 하신다 그러나 너무 잘 보여서---그분들은 거인이다---나 는 그분들에게 편지를 쓰지 못한다 우리 사이에 편지는 없 다 아버지는 텔레파시를 믿고 어머니는 자주 꽃 사진을 내 게 보낸다 나는 모국어를 잊어가는 작은 인형이다
화자는 어머니에 대한 욕망을 무의식에 억압한 채 어머니 대신 아버지를 욕망의 존재로 대처한다. 결과 “어머니를 열어보면 내가 있고, 아버지를 열어보면 내가 있다.” 나를 동시에 품은 부모님은 언어 질서에서 거인들이다. 이 거인들은 화자의 존재 능력을 뛰어넘는 대타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자는 언어 질서에서 유아와 같아서 부모에게 언어로 된 편지를 쓰지 못한다. 그런데도 사회현실에서 아버지는 화자에게 언어를 가르쳐주지 않고 “텔레파시”로 통화하려고 한다. 텔레파시는 아버지가 화자에게 말과 언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상태에서 감정을 감지하려는 심리이다. 어머니 역시 언어 대신 기계화에 의지해 “꽃 사진”을 자주 보낸다. 사회현실에서 언어를 배워야 하는 화자에게 대타자인 부모가 언어를 배제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화자가 시를 쓰든, 편지를 쓰든 완벽하게 언어를 구사할 수 없게 만든다. 장이지 시인의 시에서 편지가 다 지워지고 안 지워진다는 것은 거의 안 지워지는 것이라고 한다. 시인은 타자와 소통을 못 하지만 타자가 자신의 내면에 억압되어 있기 때문에 서로 소통하고 있다는 뜻이다. 소통의 대상은 자신과 타자들 그리고 민주주의다. 시인은 자신과 이들을 점층적으로 확대하는 시 저변에는 언어 소통의 효용성을 말하고 있다. 효용성은 언어의 단절성에 대한 문제의 제안이라면 제안이고 해결책이라면 해결책이다. 언어로 써진 편지는 타자들과 대립이나 갈등보다는 대화이고 소통이어야 한다. 소통방법으로는 ‘편지’, ‘엽서’, ‘일기’, ‘시 형식' 등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시인은 언어 형식이란 모두 ‘욕망의 그림자’에 불과하고, 꿈에 불과하다고 한다. 환상에서의 꿈은 시인이 현실에서 갈망하는 것, 즉 언어이다. 또한 시인은 현실 세계에서 욕망을 초월하고자 죽음의 세계로 새처럼 날아가고자 한다. (「야광별 시스템의 종말」) 언어 질서를 탈피하고자 하는 시인은 시에서 편지의 무의미함을 말하기보다는 상징질서에서 구조화된 언어의 본질, 즉 미끄러지는 욕망을 말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편지는 “거듭해서 꾸는 꿈”이고,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일으키는 언어'라는 것이다. 장이지 시인은 『편지의 시대』를 통해 현실 세계의 답답한 언어 질서에서 벗어나, 새롭고 경이로운 환상세계에서 새로운 언어를 욕망한다. 시 쓰기를 위한 시인의 끝없는 언어 탐색, 이 멋진 시혼이 어떻게 귀결될지 다음 시집을 기대하는 이유이다.
〚장이지 시인 약력〛 □2000년『현대문학』으로 작품활동 시작했다. □시집-『안국동울음상점』, 『연꽃의 입술』, 『라플란드 우체국』, 『레몬옐로』, 『해저의 교실에서 소년은 흰달을 본다』 □시선집-『안국동울음상점 1.5』 □문학평론집-『환대의 공간』, 『콘텐츠의 사회학』, 『세계의 끝, 문학』, □영화평론집-『극장전: 시뮬라크르의 즐거움』 등이 있다
〚권영옥 시인, 문학평론가 약력〛 □아주대 대학원 국어국문과 졸업(문학박사) □2003『시경』작품활동 시작, 2018『문학과사람』평론 연재 □비평집『한국현대시와 타자윤리 탐구』,『구상 시의 타자윤리 연구』, 평론집『비시간성에 의한 그림자 시학』 □시집『청빛 환상』, 『계란에 그린 삽화』, 『모르는 영역』 □전)상지대, 아주대 외래교수, 『두레문학』편집위원,《포스트24》시평 연재 □<두레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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