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옥 문학박사의 현장시평(5)

'흔들의자', 강정숙 시인

이영자 기자 | 기사입력 2020/08/13 [23:14]

권영옥 문학박사의 현장시평(5)

'흔들의자', 강정숙 시인

이영자 기자 | 입력 : 2020/08/13 [23:14]

                         

    

                                  권영옥 문학박사의 현장시평(5)

 

                                           「흔들의자」

                                                                     

   

          절뚝이며 너무 오래 걸었나 보다
          발바닥 마디마디 시퍼런 멍이 들고
          접혔던 기억 하나가
          도드라져 일어선다

          맨 처음 떠나온 게 오지의 숲이었나
          구절초 오만하게 꽃잎 터뜨리는 날
          불지른 한 생의 끝에
          달랑 남은 뿌리 하나

          상처를 긁어내던 벼린 손 벼린 칼끝
          무늬를 맞추면서 빗금을 궁굴리며
          비로소 완성에 이른
          환한 창가에 섰다

          낮게 흔들리다 부드러워지는 시간
          내 안에 하얀 그늘이 고요처럼 깊어지고
          지상의 한 모서리가
          이명같이 멀다 
                        -『천 개의 귀』, 「흔들의자」, 전문 

 

                                                                                강정숙 시인 : 경남 함안 출생, 2002 <중앙일보> 중앙신인

                                                                                  문학상 수상, 2009 수주문학상 수상, 시집 『환한 봄날의 장례식』,

                                                                                  『천개의 귀』, <공정한 시인의 사회> 편집위원.

 

인간 존재는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표준에 들기 위해 매 순간 타인과의 경쟁 구도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다가 정지의 한순간, 휴식을 통해 과거를 돌아보면서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게 된다. 『천 개의 귀』에서 사용된 이미지와 상징은 주로 과거에 대한 기억이다. 이를테면 시퍼런 멍, 오지의 숲, 하얀 그늘과 같은 시어는 황폐한 심리적 작용을 의미한다. 대부분 시인들은 과거 기억이나, 책임 지향 모티프에서 그리움이나 숭고함을 그린다. 그러나 시인은 상처, 울음, 고통과 같은 ‘못 견딤’을 ‘견디게’ 하는 힘을 준다. (「무두멍」, 「꿈을 앉힐 의자」, 「능소화 피는 그 집」) 다시 말해 시인은 내면의 응시를 통해 인식의 전환을 꽤 하고 있는 것이다. 젊은 날의 배경 속에는 시퍼런 멍과 상처를 긁어내는 벼린 손만 있을 뿐이다. 이후 내면의 직시를 통해 “끊어질 듯 이어지는 아득한 지문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문양의 길」)


그러한 점에서 『천 개의 귀』는 시세계의 변이 양상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금이 가고 변방이 되어버린 절망과 고통 속에서 “파랑새, 돌아온 새가, 피사체로 앉는”(「섬2」-상암 난지도) 휴식의 공간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이 ‘흔들의자’이다.


『천 개의 귀』에는 쉼과 연관되는 ‘의자’ 이미지가 등장한다. 이 ‘의자’는 처음부터 금하나 없는 환한 완성품이 아니다. 시간 순으로 의자를 살펴보면, 오지의 숲에서 탄생⤑ 불지른 한 생⤑ 거리(바람과의 동거)⤑ 어둠, 발바닥의 멍⤑ 무늬와 빗금을 맞춤⤑ 환한 창가(완성)에 선다.  전 과정이 상처 나고 절뚝거림에도 불구하고 의자는 거기에 함몰되거나 안주하지 않는다. “연장도 오래 쓰면 망치가 못이 된다/내 몸이 온전히 내 것인 적 있었는가”처럼 시인의 자각은 ‘내면’, ‘벼린 시간’, ‘환한 의자’ 등 한 가지로 연계된다.


이처럼 ‘의자’에 대한 인식의 전환은 뭇 대상에 대한 책임의식인데 그것은 대상에 대한 손 잡음이고, 떠받듦이며, 감싸 안음이다. 의자는 “날개 아픈 새가 깃을 치다 가게 하고/접시꽃이 울다가 가게 하며/당신의 부은 발목이 앉아서 쉬다가 가게” 한다. (「꿈을 앉힌 의자」) 생명체의 행위가 진행되는 동안 의자 자신의 심리는 부드러워지고 고요하게 깊어진다. 달리 말하면 이들을 감싸 안는 동안 “지상의 한 모서리”마저도 이명처럼 멀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 ‘모서리’의 상징은 파괴적이거나 횡포에 관한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이명으로 인식되어 소음으로 소멸된다. 왜냐하면 시인의 심리는 이미 흔들리던 시간이 부드러워지고, 육체의 부정적 요소인 하얀 그늘마저도 잠잠해지기 때문이다. 비로소 완성에 이른 의자는 “수거될 그 순간까지” 모서리를 잊지 않고 윤리적 의무를 다하고자 한다. 이러한 세계관은 시인의 미래지향적인 책임의식이 얼마나 강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꿈을 앉힌 의자」)

 

 

  

  
   ▲권영옥 문학평론가

 
 [권영옥 약력: 시인, 문학평론가]
 
□ 경북 안동 출생, 아주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과 졸업(문학박사)
 □ 시론서 『한국현대시와 타자윤리 탐구』, 『구상 시의 타자윤리 연구』.

 □ 시집 『청빛 환상』, 『계란에 그린 삽화』 (경기문화재단 창작기금 수혜)
 □ 전 아주대 외래교수, 현재 《두레문학》편집인, 문예비평지 『창』편집위원,

    《시인뉴스》 편집위원, <두레문학상>수상.

 □ 이메일 :  dlagkwn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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